오늘의 묵상 : 성전 안에 하나님을 제한할 수 없다. 단지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할 뿐(매일성경)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그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역대하 2장 6절)
남양주 수진사에서 지난 10월 14일 발생한 산령각 화재 사건은 개신교 광신자의 방화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범인은 여성으로 지난해부터 사찰에 찾아와 할렐루야를 외치거나 불자들에게 예수를 믿으라며 소란을 피운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1월에는 사찰 주변 방화미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으나 검찰 출석에 응하지 않고 잠적해 지명수배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합니다.
한때 ‘땅밟기’라고 하여 개신교도들이 불교 사찰 안에서 소란을 피웠던 적이 있습니다. 검색하니 복음주의 및 오순절 계통 개신교에서 행하는 기도의 일종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런 기도를 남의 기도도량에서 버젓이 행하는 공격적인 행동에서 과격한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모습이 비치기도 합니다. 이제는 도를 지나쳐 법당까지 태우는 범죄를 저지를 정도로 일부 개신교도의 행동은 미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광신을 갖게 한 것이 스스로 깨달은 것일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요. 해당 신도와 함께 목회를 한 목사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면서도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건물 앞에서 분향하려 할 뿐이라고 고백합니다. 그가 뉘라서 감히 하나님의 집을 지어 하나님을 그곳에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 단지 나는 하나님이 그곳으로 오셔서 나의 분향을 흠향하기만을 바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예배 공간 안에 제한할 수 없는 분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언제든 어디서든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우리가 모여 기도하는 교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의 도량을 방화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교회에는 하나님이 없음을 저는 단정합니다. 성도에게 방화를 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한 목사는 목사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자격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우리 사회가 종교전쟁이 없는 것은 한 때의 잘못으로 구교로 전락한 가톨릭의 회개와 수양과 인내로 자기 구도의 길을 가는 불교의 무대응 때문이지 결코 개신교의 도발과 공격성이 용납되어서가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솔로몬 왕조차 성전건축에 임해서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리란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데, 누가 하나님이 내 교회에 계신다는 확신 속에 다른 종교의 기도처에 해코지를 할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남을 가르치기 전에 자신부터 회개하라는 것이 우리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믿습니다.
“정서적으로 내가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이 잘 용납되지 않아” 아내가 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공격성을 보는 것도 지겨운데, 종교의 탈을 쓴 미친 짓을 보는 것이 힘들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으면 되지” 응답하는 나의 말에 힘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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