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장이야?”
제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아내의 권유 때문입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로서 아마도 남편의 도덕관념도 생활철학도 모두 엉망이 되어 효율적이다, 불가피하다, 세상 탓이다며 아전인수격의 파탄된 논리로 자기변명만 하는 썩어 문드러진 저를 본 때문일 겁니다.
교회에 가자고 하는 아내의 권유를 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은 아내가 다니는 다락방 모임 때문이었습니다. 성탄 전야 아내의 다락방에서 가족모임을 한다면서 아내가 저에게 같이 갈 수 있느냐고 물었고 저는 약간의 호기심을 갖고 참석했습니다.
저는 세상을 참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상한 제 몸은 험한 세상을 살면서 얻은 상처이고, 원한다고 회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날 선 비판의 논리는 생존도구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초대한 모임에서 저보다 훨씬 편안한 얼굴을 한 분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부부는 아내와는 달리 교회를 거부하는 남편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 모임이 어색한 자리임을 언뜻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순원’들이 너무도 밝고 편안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저 보다 나은데도 불구하고 세파에 찌들지 않고 어떻게 저렇게 편안한 얼굴을 할 수 있을까? 저들의 삶은 나보다 수월한 조건인 것일까? 궁금해서 다락방에 참여했고 일대일 양육과정 등 교회가 운영하는 성경공부를 위한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얻은 결론은 그들은 봉사하는 삶이 체질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남이 자신을 비난해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고, 정치적인 성향과 철학이 달라도 그 사람을 이해할 줄 알았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마치 보색 대비처럼 저의 모습이 초라하고 작다고 느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어느 누가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제가 만난 교회의 교인들은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고민하며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려움에 짓눌려 자신을 상처 내거나, 남을 비난하지 않고, 방어태세를 취하지도 않습니다. 남을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다락방의 리더는 ‘순장’이라는 분입니다. 그분들이 가진 태도의 본질이 ‘봉사’였습니다. 저는 결코 가지지 못하거나 오랜 수양 후에도 못 얻을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분이 절에 다니시는데, 벌써 수십 해가 되었습니다. 항상 절의 일을 도맡아 하시면서 절 살림을 하는 보살님입니다. 그분이 요즘 나이가 들어 절에서 뒷방 신세가 된 모양입니다. 젊은 보살들이 이제는 이분의 의견을 묻지 않고 절 살림을 한다고 합니다. 마음이 불편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절에서 신도들이 일을 하다가 그만 실수를 하면서 행사가 엉망이 되었다고 합니다.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던 보살님이 뒷방을 뛰쳐나와 젊은 보살들을 향해 큰 소리로 한 마디를 하셨답니다.
“누가 대장이야?”
남을 이해하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즐거워하는 마음이 봉사하는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어려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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