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독서정리: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무주이장 2018. 8. 20. 10:13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도근 맥도날드 지음/홍화옥 옮김/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도근 맥도날드 소개글(척 스윈들: 목사,라디오프로(Insights for Living)의성경교사)

“저자는 심오한 인격, 해박한 성경 지식, 실제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하는 메시지에 부합하는 삶을 그 자신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서문


각자의 개인적인 삶 속에 질서를 잡는다는 것은 삶의 모든 부분을 그 분께서 다스리도록 요청하는 것이다(하나님과 멀어지면서부터 인간의 소외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인간의 소외가 극복되는 방법으로 내면세계의 질서를 잡을 수 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나의 생각)

내면세계는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동기부여의 문제

2. 인생의 한정된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3. 지적인 면: 창조의 진리를 수렴하고 논리적으로 인식하는 능력

4. 영적인 부분: 각자의 내면세계의 정원(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은밀한 곳)

5. 안식 혹은 안식일의 평화로 이끄는 부분


1. 함몰 웅덩이 증상(The Sinkhole Syndrome)


플로리다의 함몰 웅덩이야말로, 서구 그리스도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영적인 문제를 잘 나타내 주는 좋은 비유이다. 우리는 두 개의 아주 다른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외면 세계(outer world) 혹은 공적 세계(public world)는 다루기가 더 쉽다. 그 세계는 측정할 수 있고 눈에 보이며 계속 늘려 갈 수 있는 세계이다. 외면 세계는 일, 오락, 소유 그리고 대인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성공이라든가 인기, 재물, 미모 등으로 쉽게 평가할 수 있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 세계(private world)는 본질적으로 영적이다. 이 세계는 선택과 가치가 결정되는 중심부이며 고독과 성찰을 추구하는 곳이다. 내면 세계를 너무 늦게까지 무시한 채 공적 세계에만 치중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싱크 홀처럼 붕괴되는 내면 세계를 경험하며 소외를 느낀다. 피곤으로 무감각해진 느낌, 실패감,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목표에 대한 쓰디쓴 환멸감 등을 느끼게 된다.


2. 조종실에서 보는 시각


내면 세계의 조종실(내면 세계의 질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신경 쇠약, 정신 파탄, 자아 붕괴 등으로 불린다.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실패할 수는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단련되고, 성숙한 성품을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외부 압력을 견뎌 내기 위한 힘의 원천이 내부에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산산조각 난다는 것은, 단순한 실수나 실패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긴장과 압력이 우리의 삶에 가중될 때 왜 우리들은 삶의 조종실로 가지 않고 그 대신 더 빨리 뛰려 하고, 더 박력 있게 우기고, 더 많이 쌓아 놓고, 더 많은 정보를 구하고, 더 나은 전문가가 되려 하는 것일까? 우리는, 내면 세계보다는 삶의 외적인 부분의 온갖 소소한 데에 더욱 많은 관심을 쏟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내면 세계는, 우리가 그 어떤 외부의 폭풍이라도 헤치고 파쇄해 버릴 수 있는 힘을 얻어낼 유일한 장소인데 말이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 23)



제1부 동기부여


3. 황금 새장에 갇혀서


사람의 내면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서는 어딘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나는 예수님이 시작하셨을 것으로 보이는 곳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즉, 부름받은 사람과 쫓겨 다니는 사람(driven men)에 대한 구별로부터 말이다. 쫒겨 다니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오늘날은 그것을 알아내기가 비교적 쉽다. 쫓겨 다니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는 표시가 난다. 이들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1. 쫓겨 다니는 사람은 오직 성취함으로써만 만족을 얻는다. 이런 종류의 사람은 삶을 오직 결과의 측면에서만 본다.

2. 쫓겨 다니는 사람은 성취의 표상들(직함, 사무실의 크기나 위치, 직위, 특권들)에 집착한다.

3. 쫓겨 다니는 사람은 보통 절제되지 않은 팽창욕에 사로잡혀 있다.

4. 쫓겨 다니는 사람은 전인적인 인격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경향이 있다.

5. 쫓겨 다니는 사람은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서툴고 미숙하다. 선천적으로 다른 이들과 원만하게 지내는 데 장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겐 사람보다 일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6. 쫓겨 다니는 사람은 아주 경쟁적인 경향이 있다.

7. 쫓겨 다니는 사람은, 반대나 불신에 부딪히게 되면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격렬한 분노를 품고 있기도 하다. 불행하게도, 쫓겨 다니는 사람 주위에 있는 많은 선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그렇듯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그러한 망발로 인한 충격을 그대로 감수할 뿐이다.

8. 쫓겨 다니는 사람은 대개 비정상적으로 바쁘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마다 나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바로 이렇게 쫓겨 다니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결정권이 있는 그러한 체계를 만들어 왔다. 그러한 체제를 가진 사업계, 교회, 가정 안에서 사람들의 성숙은 성취와 축적을 위해서 희생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축재하고 인정받고 성취하기 위해 쫓겨 다니다가 황금 새장에 갇힌 남녀들로 가득 차 있다. 쫓겨 다니는 사람의 내면 세계는 무질서하다. 그가 갇혀 있는 새장은 번쩍거리는 황금으로 꾸며져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덫이다. 그 덫 안에서는 아무 것도 견뎌내지 못한다.


4. 어느 성공한 못난이의 불행한 이야기


가. 사람들은 왜 쫓기는 삶을 사는가?

1. 인정과 칭찬이 결핍된 환경에서 자라난 유형의 사람들은 용납과 인정을 얻으려는 욕망에 끌려서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족을 얻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은, 그들의 이러한 추구는 공적인 세계에 국한된 것으로 개인적인 내면의 세계는 텅비고 결핍된 채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진정한 고통이 있는 것이다.

2. 성취욕의 또 다른 원인은, 어린 시절 체험한 심각한 상실감이나 수치감에 있다.

3. 어떤 사람들은 그저, 쫓기는 것이 생활 방식이 된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경우도 있다.

물론 쫓겨 다니는 삶은 다른 여러 가지 배경 등에서 비롯되므로 위에 열거한 것들은 단지 몇 개의 예에 불과하다.


나. 쫓겨 다니는 사람에게 남아 있는 희망

쫓겨 다니는 사람이 과연 변화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러한 변화는 쫓겨 다니는 사람 자신이, 부르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충동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과도한 성취욕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동기와 가치관들을 가차없이 파헤치기 시작해야 한다.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은 겸허하게 자기를 낮추고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것들을 포기하는 자기 훈련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것들이 꼭 나빠서가 아니라 잘못된 이유로 중요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5. 부름받은 사람으로서의 삶

가. 부름받은 사람

우리는 확신의 질을 가지고 쫓겨 다니는 사람과 부름받은 사람을 구별하려 한다. 쫓겨 다니는 사람은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때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가끔 가장 예기치 않은 순간에 앞길을 가로막는 사건이 일어나면 그들은 쉽게 무너지고 만다. 부름받은 사람들은 내부에서 용솟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타격에도 굴하지 않는 인내의 힘인 것이다.


나. 부름받는 사람의 전형인 세례 요한

요한복음 3: 27~30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도 아니고 그 분보다 앞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내가 전에 한 말을 증거할 사람은 바로 너희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옆에 서서 신랑의 음성을 기다리다가 신랑의 목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한다. 나는 지금 그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다. 부름받은 사람은 자신이 청지기임을 의식한다.

요한은 자신을 떠나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군중이 자신의 소유가 아님을 무엇보다도 잘 알았다. 이 사람 요한과 쫓겨 다니던 사람 사울은 얼마나 다른가! 사울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권을 소유한 존재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쫒겨 다니던 사람이 그것들을 잃게 되면 그것은 곧 그들에게 심각한 위기가 된다. 그러나 부름받은 사람의 경우 그러한 것들을 잃게 되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들의 내면 세계는 여전하거나 아니면 더욱 강해진다(부름받은 사람을 특징 지워 주는 속성들은 청지기의식, 정체성 인식, 자신의 역할에 대한 폭 넓은 이해, 그 역할에 대한 확고한 위탁이다)

1) 부름받은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내면 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은 자기의 정체성에 대하여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점점 역할과 사람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과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의 차이점을 구별하지 못한다.

2)부름받은 사람은 요동치 않는 목적 의식을 갖고 있다: 요한의 비유대로 만약 그리스도께서 신랑이라면 이 세례자는 그저 그 분의 들러리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 요한 같이, 오직 부름받은 사람이라랴 그러한 상황 하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것이다.

3)부름받은 사람은 확고한 위탁을 이해한다.

4)평안과 기쁨

요한이 실패자였을 수도 있다는 객관적 증거(신도들이 그리스도께로 가더라)와 요한 사이에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즉, 거기에는 요한이 그의 내면 세계 안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의심할 수 없는 실체가 있었던 것이다.


라. 부름받은 사람이 되어

누가복음 3: 1~3

디베료(티베리우스, 로마제국 2대 황제) 황제가 다스린 지 십오 년째 되던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의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 있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습니다. 요한은 요단 골짜기 온 지방을 두루 다니며 회개하는 표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나는 할 일(misson)을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일에는 용기와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그 일의 결과는 부르시는 분의 손에 달려 있다.



제2부 시간 사용


6. 누가 내 시간 본 사람 없어요?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겠어요!

가. 무질서의 증후군

1) 책상이 흐트러져 있는 것

2) 내 차의 상태: 더러워지거나 정비일자를 놓치는 것

3) 약속을 잊어버리는 일이 빈번해지거나 응답하지 못한 전화 메모가 쌓이고 할 일의 마감일을 놓치기 시작하는 등의 일이 발생하는 것

4)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허비하는 경향이 생긴다.

5) 무질서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해놓은 일을 보잘 것 없다고 느낀다.

6) 무질서한 상태의 그리스도인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로부터 얻는 기쁨을 거의 누리지 못한다.

7) 내가 무질서한 상태에 있을 때면 사적인 인간 관계에서 그것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8) 우리의 시간 사용이 무질서해질 때,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을 비롯하여 우리의 일, 그 밖에 우리를 둘러 싼 그 모든 것들을 좋아하지 않게 된다.


나. 시간의 예산 작성: 시간의 경상비와 임시비를 정할 것


다. 시간의 주인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통해 시간 관리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실제적인 교훈들

1. 그 분은 자신의 사역을 분명히 이해하고 계셨다: 그분은 사역의 기준에 맞는 일을 하셨다.

2. 예수님께서는 시간 사용 면에서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하나님과 단 둘이 있는 시간(기도 시간)을 통해 영적인 민감성을 유지하셨다.

3. 열두 명의 제자를 훈련하기 위한 시간을 따로 갖고 계셨다.


7.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가. 맥도날드의 계획되지 않은 시간의 법칙

1) 계획되지 않은 시간의 나의 약점이 있는 곳으로 흐른다: 계획된 시간은 나의 온 정력을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곧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그 일에 쏟아 부을 수 있게 하신다.


2) 계획되지 않은 시간은, 내가 속한 영역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된다: 자신의 시간 예산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세계에 진입해 온 다른 이들이 대신 시간 일정과 우선 순위를 설정해 놓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내 시간을 지배하기 전에 내가 독자적으로 내 시간을 통제하지 않았기에 이런 식으로 나 자신보다도 내 주의의 강한 사람들이 내 시간을 주도하게 되었다.


3) 계획되지 않은 시간은 긴급한 일들에 소모된다: 가장 크게 소리를 지르는 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가장 급한 일이 아니다. 긴급한 일보다는 중요한 일에 시간을 써야 한다.


4) 계획되지 않은 시간은 대중의 갈채를 받는 일들에 바쳐지게 된다.



나. 어떻게 시간을 회복할 것인가?: 시간을 포획할 수 있는 3가지 방법

1)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생활의 리듬을 알아야 한다.

2) 시간 사용 방법의 올바른 기준을 가져야만 한다.

3) 시간 예산을 충분히 앞서 세울 때 시간을 통제하고 명령할 수 있다: 8주 전 세워라.



제3부 지혜와 지식


8. 더 뛰어난 사람이 패했다.

가.정신적인 무기력의 대가

우리의 내면세계에 질서를 잡는 일은 강한 정신적인 인내와 이러한 인내의 여래인 지적 성장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 이른 출발에 따르는 위험성

조숙한 성공자는 대개 빨리 배우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관찰한 바로는 30대 초반이 되면 어딘가에서 잘못될 가능성들이, 재능있는 빠른 출발자들의 삶 속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

다. 우리의 정신을 훈련해야 할 필요성

우리의 정신은 사고하고, 분석하고, 혁신하게끔 훈련되어야 한다. 내적인 생활이 온전히 질서 잡힌 사람들은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데 힘쓴다. 엘튼 트루블러드는 다음 세 가지 요소가 잘 계발되지 않는 한 생명력 있는 기독교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1. 헌신된 내면의 삶

2. 외적인 봉사활동

3. 합리적인 지적 생활


선교사이며 전도자였던 스탠리 존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생각의 힘을 다 써서 사랑하지만, 감정으로는 메마를 수도 있다. 곧 지적인 종교인들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뜨거운 감정으로, 그러나 얕은 사고로써 하나님을 사랑한다. 곧 감정적인 종교인들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의지적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나 감정은 매말라있다. 곧 접근하기 어려운 냉철한 사람들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생가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사실들과 교리상의 제도나 규칙들을 머리 속에 주워 담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오류를 범한다. 사고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위험하게도 그 주위의 문화에 흡수되어 버린다.


9. 한 번도 읽힌 적이 없는 책의 비극

가. 성장 형태에 맞추어 사는 것

내면 세계의 지적 차원을 계발하는 것에는 적어도 세 가지의 목적이 있다.


1)지성은 기독교적으로 사고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청지기적 시각이라고 부른다. 초신자에게 있어서 지적 성장은 기독교적 시각, 삶에 대한 그리스도인다운 반응, 그리고 기독교적 세계관 계발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오랜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온 사람은 대부분의 상황에 대해 거의 본능적으로 기독교적 반응을 표출한다 하더라도, 그의 실천력은 이제 막 신자가 된 사람들처럼 열심을 내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2)우리의 지성은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 안에 기록해 놓으신 메시지를 고찰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3)정신은 내 주위의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정보와 아이디어와 통찰력을 추구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정신의 계발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살고 있는 그 세대 사람들의 종이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 자신의 향상을 위해서 지력을 계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기여하려고 사고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의 지성이 성장해야 다른 사람의 성장도 가능케 만드는 것이다.


나. 사고력 성장을 위한 조직체

어떻게 사람들이 내면 세계 안에 지적인 체계를 세울 수 있는가?

1)우리는 듣는 사람이 됨으로써 성장한다:

-아마도 듣는 자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리라.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일터를 방문하여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보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리고 그들이 현재 직면하고 잇는 특별한 문제들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했을 때 성취된 것이다.

-지도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비판자들의 말에 귀기울일 때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싶다.

2)우리는 독서를 통해서 성장한다.

3)우리는 훈련된 공부를 통해서 성장한다: 우리가 진지하게 지성의 성장과 계발을 다루게 된다면,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온전히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무한히 유익한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 원래의 의도대로 우리, 곧 우리의 예리해진 지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제4부 영적인 힘


10. 마음의 정원에 질서를

영은 그 속성인 영원성을 결코 잃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과의 교통이 거의 단절된 무질서한 상태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무질서는 내면 세계의 다른 부분까지도 완전한 혼돈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가. 즉효적인 체험

공허하게 느껴지는 영을 충족시키는 이러저러한 방법들 중에서 어떤 방법을 택하느냐 하는 것은 주로 우리의 기질에 위해 좌우된다. 즉, 당장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며 평화를 느끼게 해주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 정원을 일구듯이


다. 우리가 놓쳐 버릴 수도 있는 특권들

우리가 영의 훈련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생명력이 흘러 넘치는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많은 특권들을 놓쳐 버리게 된다. 예를 들면 창조 시 의도된 대로, 우리가 지녀야 할 실재에 대한 영원하고 무한한 견지를 즐거워하는 법을 결코 배울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잃게 될 두 번째 특권은 살아 있고 생명력 있는 그리스도와의 교제인 것이다.

훈련되지 않은 영이 잃게 될 수 있는 세 번째 특권은 하나님께 대한 책임을 의식하는 가운데 지니게 되는 경외심이다.

네 번째는 창조주 하나님과 비교하여 우리 자신이 얼마나 왜소한지를 망각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소홀히 취급되어 무질서해진 영적 중심부로는, 실패하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고통을 당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고독할 때 등과 같은 위기의 순간에 대처할 저력이나 해답을 가질 수 없다.


라.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고통에 처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데, 그 이유는 다른 아무 것도 그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복에만 탐닉한 사람들은 시류에 휩쓸리는 경향이 있다.



11. 외부의 어떤 받침대도 필요치 않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시해 버리지만 기본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네 가지의 영적 훈련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침묵과 고독


2. 하나님께 귀기울임(규칙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내면 세계의 정원은, 침묵과 고독을 위해 침잠해 있을 때뿐만 아니라 환경 속에서 의식적으로 듣는 훈련을 하기 시작할 때에도 계발된다.

듣기 위한 다른 실천 방법의 소개

가. 일기 쓰기-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

일기의 주된 가치는, 내면 세계의 정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고요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도구로서의 가치에 있다.



12. 모든 것은 입력되어야 한다.

우리가 고독과 침묵 속에서 듣는 것들은 내면화되어야 한다. 영적 훈련의 첫 단계는 고독과 침묵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배우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인 엔터 키를 두드리는 것은 사색과 묵상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사색과 명상의 체험



13. 하나님의 시각에 맞춰진 안목

위대한 성인들의 생애에 관한 책을 읽을 때, 그들이 뛰어나게 효율적으로 일한 동시에 충분한 휴식을 누렸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들이 한 일도 반드시 깜짝 놀랄만하거나 대단히 중요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미칠 영향력에도 그다지 연연해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늘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살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의 동기에서 행동했다. 그들은 타인의 그럴싸한 의견에 노예가 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인식의 노예가 되지도 않았다. 내면 세계의 정원에서 하나님과 교통을 고양시킬 수 있는 네 번째 방법은 예배와 중보로서의 기도를 통해서이다.

4. 예배와 중보로서의 기도



기도하기가 왜 어려운가?

기도의 문제에 대하여 갈등하는가?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해 보겠다.

1. 예배와 중보 기도를 부저연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2. 예배와 중보 기도는 우리들의 약함에 대한 묵시적 시인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기도는 우리가 약하며 하나님께 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3. 기도는 때때로 현실적인 결과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배와 중보기도는 나 자신의 목적에 하나님이 맞추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분의 목적에 나를 맞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전적으로 순종하고 전적으로 복종하며 전적으로 듣는 삶이야말로 놀랄 만큼 온전한 삶이다(토마스 켈리)

예배와 중보기도는 하나님을 방문하는 것이다.


기도의 내용

1. 찬양

2. 고백


중보 기도의 사역

주님께 대한 경배가 다 드려졌을 때 중보 기도는 시작될 수 있다. 중보 기도는 다른 사람의 편에서 드리는 기도를 의미한다.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가질 수 있는 특권으로서 가장 위대한 사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가장 어려운 사역일 것이다.



제5부 회복


14. 여가 이상의 휴식

가. 우리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여가나 오락은 내면 세계에 어떠한 질서도 가져다 주지 못한다.


나. 안식일적 휴식의 의미

1)입력 마감: 일의 마감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했다.

휴식을 모르는 일의 태도는 불안정한 사람을 만들어낸다.

2)영원한 진리에로의 복귀

진정한 휴식은 우리가 일상 생활의 와중에서 정기적으로 멈춰서서 우리의 삶의 근거가 되고 있는 진리와 헌신을 정리해 낼 때 이루어진다.

3)우리의 사명을 분명하게 함


다. 휴식하기로 결심하는 삶

기독교 전통에 있어 우리는 유대인들이 안식일로 지키는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삼지 않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일 주일의 첫째 날을 택하였다.

안식일은 세 가지 차원에 따르는 휴식의 원리이다.


1. 안식일적 휴식은 그리스도인 가족끼리의 예배를 의미한다.

2. 안식일은 개인 생활에 있어서 휴식과 고요함을 사려깊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안식이란 내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는 휴식을 뜻한다. 일을 다 했기 때문에 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휴식을 명하셨고 휴식이 필요하도록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쉬는 것이다.



맺음말 : 물레질(간디의 물레질은 그의 삶에 있어서 무게 중심을 유지케 하는 것으로 교만에 빠지지 않고 균형감감을 가지고 인도의 독립을 이끌어 내는 기구였다.)

다른 어떤 일보다 영적 훈련이 훨씬 중요한 활동이라는 것이라고 결단할 때에만 우리는 내면 세계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