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를 정리한다 2.
제6장 황실과 여성혐오
일본 황실의 전범을 기준으로 황실의 여성은 자궁을 대여해주는 역할로서만 존재했단다. 로열패밀리는 황실여성이 외국인과 결혼해 낳은 아이의 일본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전범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1985년 일본의 국적법은 변경되었음에도.)
제7장 춘화와 여성혐오
여자의 질투는 남자를 빼앗은 다른 여자에게로 향하지만 남자의 질투는 자신을 배신한 여자에게로 향한다. 여자에게 있어 질투란 다른 여자를 라이벌로 하는 남자를 둘러싼 경쟁의 게임이지만, 남자에게는 자신의 프라이드와 아이덴티티를 건 게임이 된다.(125쪽)
하렘 harem : 한 마리의 수컷과 여러 마리의 암컷으로 구성된 번식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
바빈스키 반사 : 성적으로 절정을 맞이하였을 때 보이는 발가락과 손가락을 굴절시키는 신체반응.
‘남성은 여성의 쾌락에 봉사하고 있다’는 논리에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그 주객전도를 가장한 레토릭 속에 쾌락에 의한 여성 지배가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143쪽)
제8장 근대와 여성혐오
근대에 들어서 남녀가 같은 교육을 받으면서 비교를 하게 된다. 전후의 남녀공학 교육 시스템에서 성적에 따른 경쟁은 있어도 원리상 젠더에 따른 차별은 없다. 비교 가능하려면 양측이 비교 가능한 공약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차별 그 자체는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으나 근대는 비교에 의해 역설적으로 성차별을 강화하였다. 따라서 성차별을 고발하는 페미니즘은 근대의 직접적 효과에 의해 탄생한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학의 개척자였던 고 고마사쿠 기미는 “‘구별’이 ‘차별’로 승격되었다”고 이 변화를 환영했던 것이며 그것을 탐탁치않게 여기는 이들은 끈질기게 ‘차별’을 ‘구별’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이다.(155쪽)
제9장 어머니와 딸의 여성 혐오
어머니가 딸에게 대리 만족을 요구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여성에게 인생의 선택지가 늘어난 극히 최근의 일이다. 여성의 인생에서 ‘여자로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이 사라지고 여자도 ‘노력만 하면 이룰 수 있다’는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딸은 아들과 같지 않다. ‘딸로서’ 그리고 ‘아들로서’의 기대 모두에 답해야 하는 시대, 딸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늘어난 시대를 뜻한다.(164쪽)
스테이지마마 : 아이를 연예인으로 키우기 위해 아이의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며 이곳저곳에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엄마를 냉소적으로 표현한 말.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결혼이 부모 자식 관계를 절단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출가외인이 그것이다. 평생에 걸쳐 어머니가 딸의 인생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 조건의 변화로 인해 현대에는 어머니의 의존대상이 아들에서 딸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것은 딸의 지위가 향상되었다는 증거일까? 어머니는 사후에도 딸의 인생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원망의 감정은 자책감과 자기 혐오로서 나타난다. 딸은 어머니를 좋아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 역시 좋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딸의 분신이며 딸은 어머니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딸에게 있어 여성 혐오란 언제나 어머니를 포함하여 스스로에 대한 자기 혐오가 된다.(174쪽) (이런 감정이 보편적인 것일까 의문은 든다.)
제10장 ‘아버지의 딸’과 여성 혐오
딸은 아버지에게서 시작된 여성 혐오를 가부장제의 대리인인 어머니를 통해 내면화한다. 여성 혐오란 남성에게 있어서는 여성 멸시, 여성에게 있어서는 자기 혐오의 대명사이다.(176쪽)
딸은 어머니와 경쟁을 하면서 가부장제 속에서 ‘아버지의 딸’이 된다.
이 글은 여성억압을 하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지만, 가부장적이지 않은 아버지의 존재에 대하여는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여성 혐오를 설명하면서 가부장제도의 상징인 아버지를 통하여 ‘아버지의 딸’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많은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밀어부치는 논리의 강제성이 보인다. 그래서 이 10장의 글은 읽으면서도 불편하다. 이런 불편함이 여성운동가들에 대한 남성들의 비판이나 비난을 합리화하지는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나의 생각)
비극 엘렉트라 : 용장 아가멤논의 딸 엘렉트라는 동생 오레스테스와 함께, 사촌과 내통하여 아버지를 모살한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남편을 죽인 죄목으로 살해한다. 포로이트 이론에서 오이디푸스가 아들의 ‘아버지 죽이기와 어머니에 대한 애착’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채용되는 것에 반해, 엘렉트라는 딸의 ‘어머니 죽이기와 아버지에 대한 애착’을 나타내는 상징적 기호로 사용한다.
피그말리온 콤플렉스 : 미숙하고 미완성인 여성을 자신의 취향에 맞춰 길들인 후 그에 대해 애착을 품는 성향. 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스스로 만든 조각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신에게 빌어 그 조각을 인간으로 변화시킨다. 이 이야기로부터, ‘피그말리온적’이라는 말은 자신의 취향에 맞춰 꼭두각시 인형처럼 길러낸 존재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을 바탕으로 제작된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가 유명하다.
롤리타 콤플렉스 : 성적으로 성숙하기 이전의 소녀에 대하여 특별한 성적 애착을 느끼는 성향(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가 원전이다.) 이는 성추행 소설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동의한다. 그런데 나는 이 소설을 읽지도 영화나 연극을 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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