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하 시집 7

악의 평범성. 이산하 시집. 창비시선453. 7

이 세상에는 야만만 어둠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야만이 흔하지 않아 뉴스가 되고 짐승이 거리를 휘저으며 여기저기 흘린 침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아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제 멋에 겨워 깔롱지며 돌아다니는 짓이 우스꽝스럽지만 누구도 입이 더러워질까 말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평범한 시민은 그들을 피합니다. 젊은 시절 응징이 답이라고 느끼며 태권도를 배웠던 치기는 사라졌습니다. 그들을 무시하는 방법은 들을 말을 듣고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습니다. 시인이 갈무리하여 들려주는 말이 '유언'이란 시입니다. 어둠 속에 둘 시가 아니라고 믿습니다. 유언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우리 승무원은 마지막이야.” -故 박지영 승무원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 -故 남윤철 단원고 교사 “내 ..

매일 에세이 2024.01.22

악의 평범성. 이산하 시집. 창비시선453. 6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 농성을 하는 바로 옆에서 치킨 먹방을 했던 짐승의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지 않아 귀만 씻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주의를 게을리하면 짐승들과 마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주경계를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이태원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이번에는 침을 질질 흘리며 먹이에 다가서는 야만의 생얼을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눈을 버렸습니다. 익명의 죽음이 누운 빈소를 보았던 것입니다. 근조 리본은 뒤집어 달았다고 합니다. 야만의 침을 가린 마스크만 보였습니다. 시을 읽다가 본 야만은 시인의 위로가 있어 읽고 난 후 뱉어야 하는 가래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악의 평범성 1 “광주 수산시장의 대어들.” “육질이 빨간 게 확실하네요.” “거즈 덮어놓았습니다.” “..

매일 에세이 2024.01.22

악의 평범성. 이산하 시집. 창비시선453. 5

시인의 민감성이 세상을 살 때 편할까요 아니면 불편할까요? 무심한 듯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민감하지 않다는 평가는 잘못일 것입니다. 무심한 듯 사는 사람은 나름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무심한 사람도 민감한 사람도 그의 우주에서 빅뱅 같은 사건 사고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용서 어릴 적 새벽마다 옆집의 달걀을 몰래 훔쳐 먹었다. 어른들이 이빨에 톡톡 쳐서 먹는 게 너무 멋있어서 나도 계속 훔쳐서 흉내를 냈다. 1주일 후 옆집 아저씨가 알도 못 낳는 게 모이만 축낸다는 이유로 암탉을 잡아 삶았다. 우리집에도 맛보라며 삼계탕 한 그릇을 가져왔다. 아버지가 장남이 먹어야 한다며 나한테 주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난 삼계탕을 먹은 적이 없다.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한 누명으로 목숨을 잃은 50년 전의 암..

매일 에세이 2024.01.19

악의 평범성. 이산하 시집. 창비시선453. 4

사람에 따라 현실인식은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장한 마음을 갖고 심지와 근육을 태워 장렬하게 전사를 하려 한 시대를 살았던 시인에게 지금의 현실은 비루하게 보일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시인에게 무어라 말을 건넬 수 없습니다. 쉽게 위로도 못하겠습니다. 그의 슬픔에 공감이 갑니다. 그는 슬픔으로 시를 마무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입은 여전히 진보를 외칠 것이고 발은 지폐가 깔린 안전한 길을 골라 걸을 것이다. 촛불의 열매를 챙긴 소수 민주주의적 엘리트들 역시 노동대중을 벌레처럼 털어내며 더욱 창대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의회공화국이며 모든 권력도 국민이 아니라 자본과 소수 좌우엘리트들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심지 없는 촛불이 아무리 타올라도 우리의 비정규직 민주..

매일 에세이 2024.01.19

악의 평범성. 이산하 시집. 창비시선453. 3

촛불은 갇혀 있다 한때 우리들의 자부심이었던 촛불에 대해서도 시인은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촛불이 밝은 빛을 토해내야 하건만 촛불이 갇혔다고 한탄합니다. 아날로그 양초촛불이 디지털 LED촛불로 바뀌었다. 아날로그 촛불은 자기 온몸을 다 태우고 녹지만 디지털 촛불은 장렬하게 전사할 심지와 근육이 없다. 노동자에서 소시민적인 인텔리로 동력이 바뀐 신호였다. 땅을 갈아엎어 토양을 바꾸지는 못하고 기껏 나무를 골라 옮겨 심을 뿐인데도 연일 축제이다 그래서 촛불도 계속 광화문 광장에 갇혀 있었고 세월호의 노란 리본도 광화문 광장에 갇혀 있었다. 촛불이 디지털로 바뀐 세상에 시인은 답답합니다. 한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십시일반 나눠 샀던 촛불을 생각해 보니 시인의 답답함이 이해도 될 듯합니다. 저는 디지털 촛불을 손..

매일 에세이 2024.01.19

악의 평범성. 이산하 시집. 창비시선453. 2

스타 괴물 시인의 장례식에 묻을 장밋빛 미래의 덧에 걸린 영혼 중에는 스타 괴물이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괴물의 실체를 찾아봅니다. 그의 주장에는 아쉬움과 한탄으로 인한 슬픔이 묻어납니다. 초보운동권 시절 한 국방색 야전잠바 선배가 담배연기 자욱한 카페 밀실에서 여러 낯선 선배 ‘동지’들을 가리키며 이쪽은 ‘투스타’ ‘쓰리스타’이고 저쪽은 ‘아직 완스타’라고 엄숙하게 소개했다. 나는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깜빵 갔다 온 횟수에 따라 평소 경멸하던 육사 출신 장군들의 계급장대로 ‘완스타’ '투스타'라 부른다는 것과 또 한 번은 ‘아직’이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세상이 적당히 좋아진 수십 년 뒤 난 그 야전잠바들의 선견지명에 또 놀랐다. 별의 숫자만큼 입신양명이 증명되었던 것이다. 멀리 내다보고 일찍부터 스..

매일 에세이 2024.01.18

악의 평범성. 이산하 시집. 창비시선453. 1

시인의 이름이 풍기는 기운이 남다릅니다. ‘산하’라는 이름이 본명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나이로 견주어 보면 아버지 세대가 ‘산하’란 이름을 지어 주시기에는 시대가 엄혹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만 자식이란 것이 이름 때문에 굴곡진 삶을 살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이름을 지을 때는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입니다. 혹여 관재수를 끼고 살아야 할 이름을 지었다면 이것처럼 낭패를 느낄 아버지의 고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식들이 크면서 아비의 뜻대로 사는 경우가 어디 그렇게 흔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아비의 뜻을 따른다면 아비의 그릇 이상으로 자랄 수도 없을 것이니 아비 된 입장에서 다만 이름에라도 어떤 액운이 없길 바라며 이름을 지을 따름일 것입니다. 하지..

매일 에세이 2024.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