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창비 간행

무주이장 2025. 3. 5. 16:38

 요즘은 출신지가 어디냐 묻지 않습니다. 차별이라는 서리가 몸을 도사리게 하니까요. 서울에 와서 살면서 이제는 부산에 가면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게 식당의 소란입니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앞에 앉은 일행과 이야기를 하려면 할 수 없이 목청을 높여야 합니다. 옆자리의 사람들도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그러니 식당 안은 더욱 소란합니다. 영화관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면 줄줄이 뒷사람이 일어나는 현상과 유사한 일이 식당에서도 존재합니다.

 

 서울에서도 간혹 시끄러운 식당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끄러운 사람은 정해져 있습니다. 유독 시끄러운 말은 사투리일 경우가 많습니다. 전국 팔도 사투리가 들려서 시끄러운 게 아닙니다. 가슴 뿌듯한 고향 사랑이 짙게 뵌 사투리, 우월감에 젖은 사투리, 기득권을 가진 사투리만이 들립니다. 이제는 억양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다정하고 심려 깊고 애정이 깃든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 온 미국인 작가 켄 리우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푹 빠져듭니다. 옷감 물들 듯 중국인의 감성과 미국인의 냄새가 배어들어 제 여권의 색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세계인이 된 듯합니다. 중국을 배척하지도 않고 미국에 혼이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지나치게 중국적이지도 않으면서 중국을 많이 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작가의 객관화 때문이겠지요. 미국적이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애쓴 흔적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열등감 없는 것은 잘난 미국인이라서 그렇겠지요. 이것,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제 생각이 너무 추상적입니다. 좋다는 말입니다. 작가도 좋고 이야기도 굿입니다.

 

 종이로 만든 야수들이 사는 동물원에서 고등학생인 주인공은 엄마를 안주로 와인을 마십니다. “경멸의 맛은 달콤했다. 와인처럼미국땅으로 온 근본 없는 엄마에 대한 경멸은 단지 사춘기의 아들과 아들을 너무나 사랑한 엄마의 어긋난 사랑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동물의 왕국도 아닙니다. 맥없는 종이호랑이는 어떤 상징 같습니다. 분명 중국 이야기인데 슬프기만 하지도 않은 게 작가의 필력이 대단한 게 분명합니다.

 

 파자점술 이야기는 우리도 익히 아는 이야기입니다. 박정희가 총을 맞고 죽을 운명이었다며 그의 이름을 파자한 점술가는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였습니다. 빛날 희자의 아래 점 4개를 탕탕탕탕총소리로 해석했던 것에 깜놀했습니다. 그의 운명은 이름에 그대로 각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권력자의 죽음 이전에 있었던 이야기, 죽기 전 권력이 휘두른 무지막지한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파자점술사입니다. 대만의 이야기가 한국의 이야기로 바뀌고 평화를 갈망한 중국인의 좌절이 과거 한반도 여기저기에 있었던 우리의 좌절과 겹칩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아이가 잔망스럽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영문학을 공부했던 작가는 법률을 따로 배워 변호사로 한 때 먹고살았다고 합니다. 미래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새 학기에도 휴학을 하기로 한 90%가 넘는 우리의 의대생들도 작가의 선택을 따라 배우면 좋겠습니다. 의대 정원이 늘어 입학의 혜택을 본 신입 의대생들도 따라 휴학을 한다고 합니다. 교육부는 신입생들의 휴학을 한 학기가 지나야 허락한다고 합니다. 법률이 의학을 이기고 있는 중입니다. 의대생들은 법률을 이기려 하지 말고 진로를 바꾸는 것을 고려해 봄 직합니다. 켄 리우처럼 변호사로 7년 정도 일하다가 다시 의사의 길을 간다면 뛰어난 의사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면 뛰어난 작가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법률을 공부한 켄 리우가 어떤 말을 했는지 알면 더욱 그를 따라 하길 바랄 것이라 기대합니다. 소개합니다.

 

우리가 집단으로서 지닌 저력은 재난 앞에서 드러난단다. 우리 정체성은 개개인이 지닌 고독이 아니라 우리가 엮여 있는 관계의 그물이란 걸 알아야 해. 개인이 이기적인 욕구를 극복해야 집단 전체가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법이야.” (모노노아와레, 377)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것은 타인들의 삶으로 이루어진 그물 속에서 차지하는 자리이다.” (모노노아와레 401)

 

 읽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내용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읽지 않으면 아쉬울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이 작가 대단합니다. 하도 거리에서 중국을 욕하는 이야기만 들었다가 번쩍 정신이 들었습니다. 말 함부로 하면 혼납니다. 중국을 욕하다 중국 출신 미국인들이 달려들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그렇게 믿는 미국의 도움이 도착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무슨 말이지? 따라가지 못한 소식을 찾았습니다.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칼 빈슨이 부산항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조금 늦은 듯하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왔으니 이제 거리가 조금은 조용해질까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으니 정신이 왔다 갔다 오락가락했던 모양입니다. 앞의 글들은 모두 잊으시고 이 책 너무 재미있습니다라는 말만 기억하시길 고대합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