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자주 가셨던 분들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지 못하는 풍경을 보는 여행은 곧 시들어졌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도 인터넷이고 홈쇼핑이고 해외여행 상품을 소개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해외여행이라고는 부산 영도를 간 것이 고작이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경험이 빈약한 저는 ‘부러우면 진다’는 생각에 아마도 해외여행의 즐거움보다는 심상함이 귀에 쏙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해외여행이 그저 그렇대’
오래전 당시에 일본인들의 유명 관광지라고 했던 유후인을 갔을 때 다정한 마을의 기억은 짧고 여행을 같이 한 후쿠오카에 계셨던 이웃의 기억만 남았습니다. 태국 파타야에 갔을 때는 봉고차에서 설핏 인사한 다른 가족과 어색한 여행을 같이 한 떫은 기억만 남았습니다. 푸른 바다, 열대어를 구경했던 스노클링의 기억도 남았지만 온 가족이 한 유일한 여행으로만 오랫동안 푸릇하게 기억됩니다.
국내여행이건 해외여행이건 장소의 중요성도 있겠지만 사람이 빠진 여행은 재미가 있을 턱이 없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138억 년 전의 빅뱅으로 시작한 우주를 여행한다는 것도 사람들이 우주를 이해한 방법을 알면서 우주의 신비에 빠져들었지 그냥 별과 우주의 사진이 예뻐고 황홀해서 빠졌던 것은 아닙니다. 유홍준 선생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이번까지 해서 11편까지는 다 읽었습니다. 선생이 알려주는 문화유산에 푹 빠진 이유도 사람의 이야기에 다름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울을 구경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인구 천만이 사는 만원인 서울을 어떻게 구경할지 요량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옛 서울,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 어디인지 알아보고서야 ‘그래. 서울구경은 사대문 안만 보면 되는구나’ 되질이 되었습니다. 사대문 밖 강남에 무엇 볼 것이 있었겠습니까? 구리에 무덤 밖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람 사는 곳 주변에 사람들이 만든 것들이 모여 있는 것이 이치라는 생각이 들면 서울구경은 사대문 안이 되는 겁니다. 사람이야기가 모이고 흩어지고 다시 모인 곳 그곳을 찾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번 11권의 이야기는 서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분들의 이야기가 많지 않아 듬성듬성 읽었습니다. 몇 번 찾아갔던 인사동의 사람이야기는 아는 분들이 더욱 없어 괜히 고샅에 있던 개성만두집만 생각났습니다. 사람을 모르니 그들이 팔았다는 한정식의 맛만 상상하였고 문인들이 모여 차 한 잔에 시간을 풀던 찻집의 향만 맡았습니다. 선생에게 사대문 안은 추억과 향수가 묻어나는 곳이었습니다. 지금 선생이 찾아가도 추억과 향수가 묻어나는 사대문 안의 마을과 거리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모르는 저는 그저 서울의 번화한 도심지, 인심도 말라버린 조그만 관광지로만 인식되었습니다. 사라진 허름한 뒷골목 이면수(임연수) 생선구이집, 사라지지 않고 도심의 빌딩 안으로 자리를 옮긴 식당들은 애써 추억도 같이 옮겨간 흔적이 없습니다. 사람은 사라지고 장사만 남은 곳에서 감동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의 책을 통하여 선생이 느끼는 추억과 향수를 그래도 얼기설기 엮어서 얼핏 본 것만으로 서울 사대문 안 구경을 하러 갈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빠진 서울 사대문 안에 선생의 사람이야기가 살아 있습니다. 선생을 알아서 그곳을 찾아갈 생각도 한 것이지요. 고마운 일입니다. 자꾸 정 줄 곳이 있다는 곳이 어디 흔한 세상은 아니지요. 책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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