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하게 읽히는 글을 쓰는 작가로 저는 고 최인호 선생을 기억합니다.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는 인터넷도 없어 책을 통해 책을 소개받은 경우라 그의 작품을 읽은 것이 몇 권 되지는 않습니다. 영화를 본 건지 책을 본 건지 그것은 제 서가를 찾아봐야 확인을 할 수 있겠지만 그의 글이 술술 읽혔다는 것은 기억이 선연합니다.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유림(이건 전체를 다 읽지는 않았습니다)처럼 역사나 종교를 소재로 쓴 글도 쉽게 설득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훌륭한 글쟁이, 소설가로 기억합니다.
고 최인호 선생을 이어 경쾌한 글을 쓰는 작가로 저는 극작가 김수현이 생각납니다. 맞받아치는 대사의 경쾌함은 궁합이 맞는 연기자와 찰떡이었습니다. 대부분 드라마를 통해서 그의 작품을 만났지만, 1978년 그가 쓴 ‘상처’를 읽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혼자가 된 여자가 새로운 미래를 향해 가며 과거를 미련 없이 떨치는 장면에서 ‘파이팅’ 응원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초판을 읽은 것인지 아닌지 이것 역시 제 서가를 확인해야 합니다만 제가 20세 안팎에 읽은 것이 맞을 겁니다.
경쾌한 글을 쓰는 세 번째 작가를 만났습니다. 글이 술술 읽힙니다.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면서 청실홍실 엮는 재주가 비상합니다. 그가 인용하는 대사들도 경쾌했습니다. “새 뒤집어 날아가는 소리” “칼로리 높다는 개사료를 씹었다” 같은 비유를 들으면서 화롯가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퉁도 섞고 찰진 비유도 섞어 이야기하시던 할머니들이 생각났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할머니의 대사입니다. 친구가 자기 집이 불편해 우리 집에 놀러 와서는 며칠을 눌어붙었습니다. 내일이 설날인데도 자기 집으로 가지 않는 친구를 불편해하시며 제게 말했습니다. “씹 밖에 난 저 놈은 조상도 없나?” 이후 그 친구 별명은 “씹 밖에 난 놈”이 되었습니다. 작가는 1978년생입니다. 40대 작가가 사는 세상이 만만하지 않은 듯합니다.
이야기꾼에 매료되어 이야기책을 펼칩니다. 재미있던 없던 저는 정성이 든 게 보이면 끝까지 읽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품도 많이 들고 에너지도 많이 소모되는지라 될 수 있으면 끝까지 읽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과거 책 한 권 내려면 출판사를 통과해야 하고 모진 사람들의 평가를 거친 후에야 가능했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중간에 책을 덮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재미까지 있는 책을 쥐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행복해집니다. 오늘도 출근길에 제가 내려가는 길을 거슬러 올라오는 아파트 청소 아주머니와 닮은 심여사가 시퍼렇게 날을 간 칼 세 자루를 가방 속에 넣었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집니다. 혹시 일을 하시는데 제가 쓸데없이 간섭하여 죽어도 싼 놈이 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심여사가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이야기 하나씩을 꿰차고 있다며 재잘조잘 이야기를 하는 작가 강지영이 멋집니다.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를 있는 듯 이야기하는 능수능란한 솜씨가 부러워 그의 성격도 언죽번죽할 것이라 모함도 합니다. 이야기가 참기름 바른 절편처럼 입에서 감돌다 기분 좋게 목을 타고 넘어가고 배가 부릅니다. 이런 이야기가 또 있을 것 같아 그의 작품을 기억합니다.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죽어도 싼 놈들을 죽이는 이야기는 경쾌할수록 재미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왜 고구마 같을까요? 여기저기에서 심여사를 닮은 칼잡이들이 그리워집니다. 재미있습니다.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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