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기억서점. 송유정 장편소설. 다산북스 간행

무주이장 2024. 11. 22. 09:16

 주말 이웃들과 융건릉을 갔습니다. 부부가 함께 합장이 된 뒤 혜경궁 홍 씨의 소회는 애틋함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 옆에는 아들 정조가 아내와 함께 합장되었으니 부자가 같은 산 능선 아래 살아서 느끼지 못했던 정을 나누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융건릉(隆健陵) 사적 206호로 지정된 문화재 장조(사도세자)와 그의 비 헌경왕후(혜경궁 홍 씨)를 합장한 융릉(隆陵)과 그의 아들 정조 효의왕후를 합장한 건릉(健陵)을 합쳐 부르는 이름으로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다)(위키백과).

 

 능을 따라 조성된 산책길을 걷다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고 갑자기 전혜린이 생각났습니다. 그의 책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은 때가 20대였으니 불확실한 기억이지만 행복은 찰나이고 그 짧은 행복을 기다리며 영원할 것 같은 불행을 견디는 것이 무의미하다 생각한 전혜린이 자살을 했다는 얘기를 전하며 그 생각에 동의를 하느냐고 일행에게 물었습니다. “누구라고 쉽게 나는 행복했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만 고통스러운 기억이 별로 없다”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고통은 기억에 남지만 행복은 보통 쉽게 기억에서 지워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답하신 분은 행복한 삶을 사셨다고 믿습니다. 저분이 아닌 당신은 혹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바로잡고 싶습니까?

 

 기억서점을 우연히 방문한 저는 아이가 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어 순환선 지하철을 타고 몇 바퀴를 돈 후 외로움을 달래며 투벅투벅 집으로 돌아오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작은 아이를 만나고 싶습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버거움에 지친 얼굴이겠지만 그래도 억지로라도 웃으며 아이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미안하다. 아빠가 잘못했다사과도 하고 싶습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아줄 줄 알았다. 내가 네 마음을 알고 싶은 노력은 하지 않고 내 마음만 알아달라고 보채기만 했구나. 미안하다. 이제부터 내 마음보다는 네 마음을 먼저 알아채는 연습을 해야겠다. 나도 딸바보가 되고 싶다. 사랑한다.’ 그러면 낭비한 시간을 회수하고 회한의 시간을 없앨 수 있을까 기대합니다.

 

 두 번째 과거로의 여행은 둘째 아이가 태어난 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7년 동안 아빠와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한 큰아이의 마음을 다독이며 아이의 서운함을 알아주고 위로하고 싶습니다. 기다리던 아이가 우리에게 온 기쁨만으로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는 젊은 날을 둘러보고 저만치 떨어져 있는 큰 아이의 손을 잡고 놀이터로 갑니다. ‘아빠 엄마가 섭섭하진 않니? 우리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그래도 간혹 아빠 엄마가 섭섭하면 말해주겠니? 사랑한다 내 딸.’ 눈을 마주치고 꼬옥 안아주며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이의 아빠로서 서툴어서도,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도 그랬겠지만, 아이에 대한 아빠의 관심이 먼저여서 아이들에게 갔더니 세 번째 여행은 아내에게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현재에서 가까운 미래부터 차근차근 돌았어야 했는데아이를 찾아간 때 이후의 과거로는 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아내에게도 잘못을 말하고 용서를 받아야 하는 과거가 분명히 있는데 갈 수가 없습니다. 저의 과거 여행은 현재를 사는 어수선함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기억서점을 나서야 합니다.

 

 “지원 씨는 본인의 선택으로 달라질 수 있는 일을 찾아요.” 작가는 과거를 바꾸는 일이라고 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은 그들 만의 선택이 있습니다. 지원 씨는 자신이 겪은 기억서점에서의 과거 여행이 삶이 뒤바뀌는 기적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줄 아주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제가 바뀌어 저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이 섭섭하고 만족스럽진 않지만 동의합니다. “누구나 하나씩은 끌어안고 있을 상실에 대한 진심 어린 공감을 건네고 체온과 같은 온기의 동지애를 전하고 싶었다.” 작가의 기대는 저에게 접수되었습니다. 작가가 보내는 감사가 따뜻합니다. 지원 씨를 알아 따뜻했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