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에 잠 못 들었던 경험이 너무 좋았나 봅니다. 최진영 작가의 책을 도서관 서고에서 뺐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느낌이 다른 글에 의구심을 가지면서 그래도 일요일 시간을 내어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출근하여 블로그 글을 검색하니 제가 읽은 ‘밝은 밤’의 주인공은 최은영 작가였습니다. 나쁜 기억력을 탓하기 전에 작가의 글이 다름을 느낌으로 알아차린 저의 감각에 먼저 칭찬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서평을 작성하는 것은 기억을 믿기보다는 기록을 믿기 때문입니다. 최은영 작가와 최진영 작가 두 분을 어쨌든 다 알게 되었습니다.
팬데믹이라는 말을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경험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입니다. 지금도 아직 팬데믹의 주역인 바이러스, 코로나-19는 변형을 계속하며 우리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팬데믹 초기 우한바이러스니 중국바이러스니 혐오를 실은 단어가 난무하고, 환자들이 비닐에 싸여 가족의 배웅도 받지 못한 채 집단적으로 매장되는 소식은 참혹했습니다. 총성도 하나 없는 상황에서 세계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쓰러져 죽었습니다. 예방약을 확보하느라 각 나라가 경쟁하면서 가난한 나라들의 시민들을 소외시켰습니다. 생명은 값이 다 달랐습니다. 한 유명 감독은 성폭행 논란을 피해 라트비아로 몸을 옮겼다 바이러스에 당하기도 했습니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지만 한국에 있었다면 죽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을 것입니다. 타국에서 맞이한 외로운 죽음입니다. 감독의 부음을 들은 사람들의 소회도 가지각색이었을 것입니다.
이 책은 팬더믹 이후 질서가 무너진 세계를 떠나 안전하리라 믿는 곳으로 피난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치료약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은 아이들의 간이 특효약이라며 아이들을 사냥합니다. 약한 자 먼저 죽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경제가 무너지면 경제적 약자가 먼저 고통 속에 방치됩니다. 세상의 질서가 무너지면 힘과 권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가 먼저 소외됩니다. 혼자보다는 가족이 모이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고 가족보다는 패거리가 살아날 확률이 높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살 확률이 높아지는 세상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한국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로 탈출하여 러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피난민들이 만나고 죽이고 헤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망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사라지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만약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생존 경쟁에서 배운 폭력일까요? 정교한 속임수? 불신? 작가는 사랑이 아닐까 짐작을 하는 모양입니다. 아무리 해가 지는 곳으로 옮겨 가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믿고 싶은 모양입니다. 끝없는 생존 경쟁의 치열하고 저열함 속에서 과연 그럴까요?
인간성에 대한 작가의 긍정이 쉽게 와닿지 못하는 것은 세상이 무너져 폭력이 난무하고 사람이 맥없이 죽어가는 세상을 보며 슬픔에 잠겼다가 그 슬픔을 잊기도 전에 사랑의 절박함을 말하는 데서 찾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슬픔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슬픔보다는 사랑을 보자. 맥없이 쓰러지는 사람들 속에서의 절규가 맥없이 쓰러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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