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빈 옷장.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1984BOOKS 간행

무주이장 2024. 11. 7. 14:33

 이 책과 함께 읽고 있는 책이 안희연 시인의 산문집 단어의 집입니다. “빈 옷장을 읽고 난 후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안 시인의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정성과 사랑으로 기도로 길러진 존재들이다.” (125)

 

 과연 그럴까요? 얼마 전 뉴스에서 30대의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40대의 아들도 아버지를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은데, 같은 소식을 제가 잘못 들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이유는 아버지의 폭력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자기를 향한 아버지의 폭력에 대항했다는 설명입니다. 너무 극단적이 예인가요? 키운 부모와 양육된 자식 간에 오해는 늘 있습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지푸스의 돌처럼 부모와 자식의 권리와 의무가 끝없이 갈등하면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맴을 돌거나, 언덕 어디쯤에 붙들어 두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비극적인 아들은 자신이 부모와 친지들의 정성과 사랑, 기도로 길러진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까요?

 

 십 대를 거치면서 누구나 갈등을 겪습니다. 쉽게 사춘기를 겪는다는 표현을 합니다. 누구나 겪기에 청춘의 경험을 가볍게 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가볍게 넘기기에는 중대하고 치명적인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평생 동안 짊어질 짐을 만들기도 합니다. 누구는 삶을 포기하기도 하지요. 아이를 키울 때 부모는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조심을 해도 부모는 잘못을 피할 수 없기도 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듣기 거북하지만, 심리상담가 중에는 아이들의 상처는 모두 부모와 그들이 만든 환경 때문이라며 훈수를 두기도 합니다. 쉽게 동의하기에는 훈수꾼들의 지식이 천편일률적이고 상투적으로 들릴 때가 많습니다. 아니 에르노의 빈 옷장은 그의 자전적 소설의 초기작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가 십 대 시절 직접 겪었던 것이든 다른 사람의 경험이든 아니면 작가의 상상이든 주인공 드니즈 르쉬르가 겪었던 환멸과 좌절 그리고 소망과 죄책감을 불편한 채 이해하려 애를 썼습니다.

 

 적어도 책을 읽으며 드니즈를 이해한 시간이상을 소비하여 어떤 사람을 알아야 훈수를 둘 수도 있겠지만 그 훈수가 적절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작가는 주제를 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훈련이 되어 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서툰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잠깐 듣고는 쉽게 자문을 하는 모습에 불신부터 생길지도 모릅니다. 자문이나 훈수보다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방법이 훨씬 보기에 편할 것 같습니다.

 

 말은 쉽게 하지만 저 역시 드니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식료품점을 겸한 술집(카페)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부심, 경제적 빈곤 속에서도 딸의 교육을 위한 투자에 최선을 다하는 부모님에 대하여 고마워하지 않는 드니즈가 한편으로 불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벗어날 수 없는 환경에 대한 절망과 좌절감을 극복하려 미움과 질시 증오와 무시로 대항하지만 결국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인적 물적 환경은 자신을 구성하며 옥죄는 굴레이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이끄는 토대임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드니즈를 알면 편해지느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드니즈를 무시하면 편해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춘기를 겪은 우리 모두가 드니즈를 이해할 수 있을 듯하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제가 겪은 사춘기가 드니즈의 그것보다 가볍고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드니즈가 겪는 모습을 보며 지난 시절 숨 막힐 듯했던 시간을 상기하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타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요즘 새삼 느낍니다. 문학이 소설이 시가 타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갖게 하는 수단일 것도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살면서 겪는 많은 힘든 일에 대한 시청을 생략한 채 긍정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문학 소설 시에 대한 유감이 있습니다. 다행히 아니 에르노의 이 책은 결론이 없습니다. 그저 드니즈가 생각하는 자기 삶을 들여다보느라 결론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저 또한 사춘기의 고민과 결심과 갈등과 해소되지 않은 개념 짓지 못하는 많은 일들에 대하여 다시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타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보다는 우선 나 자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생각해보아야 할 듯합니다. 드니즈처럼 솔직하지 못한 저의 청춘에 대한 유감을 알게 한 책이었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