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케인스학파: 개인에게 이로운 것이 전체 경제에는 이롭지 않을 수도 있다. 케인스는 거시 경제학(경제의 각 부분을 단순히 더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보고 분석하는 경제학 분야다) 분야를 창시하여 경제학에 대한 정의를 바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케인스는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자동으로 균형을 이루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해서 실업자, 가동을 쉬는 공장, 팔리지 않는 물건이 공존하는 상황이 오랜 기간 계속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했다.
케인스학파는 고전학파나 신고전학파보다 20세기의 선진 자본 사회에 더 적절한 경제학 이론을 구축했다. 케인스식 거시 경제 이론은 19세기말 이후 예금자와 투자자가 구조적으로 분리되어 저축과 투자가 동량이 되는 것이 힘들어지고, 그에 따라 완전 고용을 달성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인식한 데서 출발했다. 이와 더불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이 하는 중요한 역할을 제대로 강조한다. 케인스 이론에서는 금융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케인스학파는 거시 경제의 단기적 변수에 초점을 맞춘 탓에 기술 발전이나 제도 변화와 같은 장기적 문제에 상당히 취약하다. (149~154쪽)
아. 제도학파: 신제도학파? 구제도학파?: 개인이 사회적 규칙을 바꿀 수 있다 해도 결국 개인은 사회의 산물이다. 개인은 사회의 산물이라는 개인의 사회적 성격을 과소 평가하고, 심지어 무시한다는 점에 반론을 제기하여 당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고전학파 및 신고전학파에 반발한 일단의 경제학자들의 집단을 말한다. 이 학파가 가장 빛을 발한 것은 뉴딜인데, 많은 제도학파 경제학자들이 뉴딜 정책의 설계와 실행에 참여했다.
1960년대 이후 제도학파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제도 자체가 생겨나고 지속되고 변화하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완전히 이론화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고, 개인의 사회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 지나쳐 급기야 구조 결정론으로 흘렀다는 것이다. 개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의해 완전히 결정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사람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1980년대부터 새로운 제도학파 경제학을 만들었다. 이들이 구제도학파와 갈라지는 지점은 개인의 의식적 선택에서 어떻게 제도가 탄생하는지를 분석한 점이다. 신제도학파의 주요 개념은 거래 비용이다. 재료비와 임금 등 생산 비용만이 유일한 거래 비용이 아니라 교환이 벌어진 후 그 계약 관계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포함하였다.
신제도학파는 기본적으로 제도를 개인의 무한한 이기적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도구로 본다. 하지만 제도는 ‘제약’할 뿐 아니라 ‘가능’하게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신제도학파가 제도의 ‘형성적’ 역할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제도는 단지 개인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동기를 형성하기도 한다. 제도의 역할에서 이 중대한 측면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신제도학파는 완전한 제도 경제학이라고 할 수가 없다. (154~159쪽)
자. 행동주의학파: 인간은 충분히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규칙을 통해 의식적으로 선택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인간이 항상 합리적이고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신고전학파의 가정과 달리 행동주의는 인간 행동을 있는 그대로 연구하려 한다는 의미에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 접근 방법을 경제 제도와 조직의 연구에까지 확장한다. 행동주의 시발점은 1940년대와 1950년대, 특히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먼의 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이먼은 인간이 비합리적인 존재라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합리적이려고 노력하지만 그럴 수 있는 능력은 너무도 제한되었고, 우리가 결정을 내리는 데 가장 큰 장애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 때문에 ‘지름길’을 발달시킨다고 한다. 어림짐작, 상식, 전문가의 판단 등이 그 예이다. 인간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주장처럼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최소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선택을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제한된 합리성을 보상하기 위해 사회 제도뿐 아니라 조직의 일상적 규칙도 구축한다. 개인 수준의 휴리스틱스(혹은 직관적 사고)와 마찬가지로, 조직과 사회의 규칙도 우리가 누리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지만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 행동주의학파에서 특히 강조하는 점은, 일정한 규칙이 있으면 당면한 문제에 관련된 다른 주체들의 행동을 더 예측하기 쉽다는 사실이다. 모두 같은 규칙을 따라 특정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대 자본주의 경제를 시장 경제가 아니라 조직 경제(기업이나 정부의 내부에서 미국 내 경제 활동의 80% 정도가 일어난다고 추산한다)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행동주의학파는 감정, 충성심, 공평함과 같은 인간의 성질들이 우리의 합리적 선택 과정에 도움을 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가장 최근에 생긴 경제학파임에도 인간의 합리성과 동기에 관한 이론을 완전히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인간사회를 개인에서 시작해, 아니 그보다 더 낮은 단계인 사고 과정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해하려고 한 행동주의학파의 시도는 강점인 동시에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미시적’ 수준에 너무 초점을 맞춘 나머지 이들은 종종 더 큰 경제 체제를 보는 눈을 잃고 만다. (159~164쪽)
경제학파에 대한 요약을 하면서 경제를 보는 시선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과거 대학에서 경제학원론을 배울 때 아무 감흥이 없었던 것에 비하면 경제적 사건, 사고로 점철된 현실을 살아온 세월이 쌓이면서 저자의 설명이 실감이 난 듯합니다. 저자는 경제학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러 학파를 아는 것은 경제라는 복잡한 대상을 더 풍부하고 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해하게 해 준다고 설명합니다. 나아가 경제학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서 경제학의 이종 교배를 권합니다. 이종 교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학파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경제학 이론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도덕적, 정치적 가치관에 근거하기 때문임을 이해하고 나면, 경제학을 제대로 알게 되고, 다시 말해서 옳고 그름이 확실한 ‘과학’이 아닌 정치적 논쟁으로서 경제학을 토론할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그는 확신합니다. 경제학자들에게 속지 않기 위한 경제학 공부는 다양성과 이종 교배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설명이 솔깃합니다. 정치적 의견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습니다. 경제 이야기에 정치 이야기는 빼라는 말이 얼마나 허구의 주장인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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