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장편소설. 문학동네

무주이장 2024. 4. 9. 14:30

 1956년부터 1962년 일곱 해를 살았던 시인 백석(백기행)을 작가 김연수는 소설로써 기억합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정체성을 가집니다.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두리번거리며 당황하게 됩니다. 백석이 시를 쓴 마지막 기간이 1956년부터 1962년이었다고 합니다. 일곱 해의 마지막, 1962년에서 김연수의 이야기가 끝나는 이유입니다(백석은 1996년 사망했다고 합니다).

 

 백석은 1912년 태어났고, 1996년 북한에서 죽은 시인입니다. 동족이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던 전쟁통, 낙동강 전선까지 참전하여 인민군 종군기자로서 기사를 썼던 백석은 전쟁 후, 이념의 칼날이 사람을 난도질하는 북녘에서 시인으로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를 기억하며 작가 김연수는 일곱 해의 마지막을 기억합니다. 이념으로 난도질하던 거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시인은 작품활동을 하려고 애썼지만 결국 절필을 합니다. 더 이상 시가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절필을 해야 하는 것은 그가 시대와 사귀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대와 헤어지기도 어려웠던 백석은 숙청되어 평양에서 쫓겨났고, 삼수에서도 멀리 떨어진 독골 관평협동조합에서 양을 돌보며 살았던 것으로 작가는 적고 있습니다. 평양에서 쫓겨왔지만 그는 평양에서 살았다 하더라도 삼수갑산을 가고 있었을 테니 거기나 여기나 매한가지라고 말합니다(230)

 

 대학을 다니던 시절, 독재에 맞서 돌을 던지던 구석기시대를 살아야 했던 학생들이 서로를 고양하며 학습했던 이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절을 다시 들먹이는 말은 트라우마처럼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깨웁니다. 민주화 사회 어딘가 우리의 피와 땀이 있다고 자화자찬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회 현상, 권력을 쥐려고 늘 주장했던 종북이니, 빨갱이니 척결이란 말들을 뱉는 사람들에게서 제발 벗어나면 좋으련만 2024년 오늘 선거철을 두고 다시 재방송되고 있습니다. 다만 매가리가 없어진 것이 조금 위로가 됩니다.

 

 김연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념이란 걸 생각해 봅니다. “(김일성) 수령이 문학에서 낡은 사상 잔재를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라고 교시를 내린 뒤, 전국의 도서관과 도서실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이 소장 중인 책들 가운데 반당 반혁명 작가의 책들을 회수해 공개적으로 불태우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거기서 불타는 한 권 한 권은 저마다 하나의 세계였다. 당연히 서로의 주장은 엇갈리고, 지향점은 다르고, 문체는 제각각이다. 그렇게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고, 현실은 그 무수한 세계가 결합된 곳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세계가 있고, 또 추악한 세계가 있다. 협잡이 판치는 세계가 있고, 단아하고 성실한 세계가 있다. 어떤 세계는 지옥에, 또 어떤 세계는 천국에 가깝다. 이 모든 세계가 모여 다채롭고도 영롱하게 반짝이는 빛을 발하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 한 권이 불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현실 전체가 몰락하는 것이다.” (190-191)

 

 사람을 억압하고, 자유를 침해하며, 생각을 단죄하고, 우리들이 공감하여 동서고금을 통하여 인정된 가치를 훼손하는 이념과 그 이념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세상은 두 번 다시 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부릅뜨고 다시 세상을 보게 됩니다.

 

 문학이 가진 힘을 저는 이제는 믿습니다. 내일이 선거날이군요.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