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한 사람의 마을. 류량청 지음. 글항아리 간행 4

무주이장 2024. 1. 29. 13:07

 

봄의 걸음걸이

 

 제가 3년 전에 농장주와 같이 보살폈던 사과 과수원은 고작 300주의 과수만 있는 조그만 밭입니다. 주말이면 반드시 내려가서 나무를 만나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벽 동이 틀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밭에 있어야 했습니다. 매주 내려간다고 했던 계획도 틀어져 2주에 한 번 내려가는 것으로 바뀌다가 다른 일이 있으면 그 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주를 쉬면 그만큼 밭일은 늘어나 있습니다. 일 년의 경험으로 그쳤습니다. 도저히 짬을 낼 수 없으니 남의 밭만 망치는 꼴이었습니다. 농장주의 건강도 나빠져 이웃의 다른 분에게 밭을 넘겼습니다. 서툴렀지만 그래도 바삐 보내며 과수를 다루는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불과 3년 전과 작년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냉해를 걱정하는 일이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농사짓던 때, 냉해를 입었다는 말은 어쩌다 들었지만 이제는 매년 걱정을 하여야 합니다. 무주구천동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둑을 사이에 둔 과수원은 새벽안개가 자주 있는 지형입니다. 안개가 걷히기 전 기온이 내려가면서 냉해를 입는 경우 그 피해가 더욱 극심합니다. 꽃이 허드레지게 피었는데 갑자기 냉해를 입었으니 꽃은 죽고 열매를 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가을밭에는 발갛게 익어가는 사과가 거의 없었습니다. 작년 그리고 금년 과일값이 격렬하게 오른 이유 중 하나입니다. 꽃은 같은 시기 피니 냉해를 입으면 전멸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가의 글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봄이 막 시작된 작가의 마을 황사량은 대부분 벌거벗은 땅입니다. 수많은 것이 아직 나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드문드문 고개를 내민 풀이 있긴 하지만 절반은 여전히 씨앗 상태로 묻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황사량에 봄이 걸어오는 속도입니다. “그들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 이른 봄의 해가 아무리 뜨거워도 그들은 적당히 더디게 움직인다. 꽃샘추위가 꼭 있기 때문이다. 추위가 한바탕 밀려와 먼저 나온 파릇한 싹을 죽일 때, 아직 움트지 않은 풀씨와 아직 깨어나지 않은 벌레들이 살아남아 대지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는다.”

 

 황사량의 풀과 꽃들은 꽃샘추위를 대비하는데 무주의 사과꽃은 왜 대비를 하지 못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사과꽃은 4~5월에 핍니다. 꽃샘추위를 검색하면 보통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까지 나타난다고 합니다. 사과꽃은 왜 전멸을 할 정도로 개화시기가 비슷할까요? 오랫동안 심긴 밭에서 살아온 사과꽃 중에는 게으르거나, 지나치게 조심을 하는 꽃이 없었을까요? 혹 사람의 손길이 지나쳐 퇴비가 충분하여 영양상태가 좋은 나무가 너무 호기롭게 꽃을 피운 걸까요? 날씨까지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사과꽃을 독촉한 건 아닌지 그래서 호된 꾸지람을 듣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에 간섭을 하기 좋아합니다. 계획성을 강조하고 예측을 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제 무주에서 목화씨를 얻었습니다. 무덤에 두고 간 꽃다발에 아마도 목화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덤가에 두 그루가 자랐는데 형님이 수확을 했습니다. 목화송이에서 뺀 씨앗이 많습니다. 이번 봄에 목화를 심을 때 이들이 같은 시기 싹을 틔우는지 유심히 볼 생각입니다. 그러려면 여기저기 심어야 할 겁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