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 김태형 지음. 갈매나무 간행 1

무주이장 2023. 12. 21. 16:49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심리학은 병든 사회를 외면합니다

 

 저는 군인의 길을 걸으려고 결심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 학자금을 준비하지 못한 가난이 저를 억누르지 못하도록 도피할 수 있는 곳이 국비 지원이 가능한 사관학교였습니다. 젊은 시절의 꿈이 군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가난의 굴레에서 해방이 가능한 길이 그 길뿐이라면 제게 선택은 사치였습니다. 사관학교 입학시험을 치는 곳은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였습니다. 당시 사관학교의 입학정원이 200명 안팎으로 기억을 하는데, 한 교실에 가득 한 수험생이 30명 남짓이었고, 한 교실에 1-2명의 합격생이 나올 수 있는 경쟁률이었습니다.

 

 시험을 통과하니 다음은 체력 테스트였습니다. 태능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서 체력 테스트를 치르고 면접도 보았습니다. 남은 것은 신원조회 절차였습니다. 결론은 불합격이었습니다. 사돈에 팔촌까지 친인척의 사상검증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디선가 걸렸던 모양입니다. 제 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셨다가 포로로 끌려가 남북 간 전쟁포로교환 때에 생환하셨습니다. 사관학교 입학에 이런 절차가 그 뒤에 없어졌는지 아니면 아직도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상심한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살던 지역에서 장학금을 받아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한 뒤, 사관학교 교수의 길을 가려던 저의 꿈이 박살 난 것에 실망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작가 이문열은 고시공부를 해도 임용이 될 수 없다는 것에 실망하고 작가의 길을 걸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름난 작가가 되어 많은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홍위병들에게 공격을 받는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그의 몰락을 본 듯했습니다. 그를 사랑했던 젊은이들은 그의 저서를 작가의 뜻에 따라 시중에서 태웠습니다. 이문열의 변신을 심리학자들은 아마도 개인의 심리적인 어떤 요인이 작용하여 심정의 변화를 일으켰을 것이고 이것이 그의 정치관에 작용을 하였을 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라는 추측은 저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문열의 변신은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뭔가 궁색해 보입니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은 불가항력이고 불가항력에는 대항할 수 없으므로 개인의 주관적 심리만 연구 가능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주어진 환경에 단순히 적응하며 사는 동물이 아닙니다. 주어진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환경이 병이 들었으면 병든 사회를 고치려 달려드는 억세고 지혜로운 동물입니다. 저도 이문열도 연좌제의 굴레를 썼습니다. 저야 소시민으로서 살면서 사회변혁의 투사가 되기에 함량 미달이었지만, 이문열은 유명 작가로서 그를 옥죄었던 병든 사회를 변혁할 힘이 남달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문열이 망가지는 이유를 심리학자들은 개인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그에게 심리치료를 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정치군인을 싫어하고 지방 토호세력을 부정하는 마음 또한 심리학자들은 욕구불만에 의한 부정적 비관적 심리라고 진단을 할 것입니다. 이문열도 저도 이런 진단에는 동의하지 못할 것입니다.

 

 김태형 소장은 심리학에서 모든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환하는 경향을 비판합니다. 자본주의가 신자본주의로 변하면서 세상은 가짜 자존감을 내세워 사람들을 못살게 굽니다. 사회가 병이 들었지만 병든 사회는 외면한 채 철저히 개인 이기주의와 주관주의의 틀에 묶어 놓고 개인에게 노오력을 계속할 것을 강조합니다. 현학적인 심리적 정신의학적 단어를 사용하여 사람들의 반박을 제어합니다. 객관적인 조건을 놓아두고 주관적 심리만을 다루는 심리학은 절반의 성공이고 또한 절반의 실패입니다. 반이 실패하면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병폐는 우리가 절대 고칠 수 없는 철옹성이 아닙니다. 개인은 적응만 하고, 어쩔 수 없고 고칠 수 없는 고착된 환경이 아닙니다. 김 소장의 주장에 관심이 가는 이유입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