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전원생활을 꿈꾸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귀농했다고 하다 귀촌했다는 말로 바뀌는 경우도 봤습니다. 저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귀농교육이라는 것을 받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누구든 처음이면 궁금한 것투성이고 불안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험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언덕 위에 하얀 집을 크지 않게 짓고 싶었습니다. 텃밭이 한 300평 정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내와 함께 노년을 같이 보내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이웃사촌들이 마음을 열고 가진 것을 나누며 살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이런 꿈은 현실에서는 좀체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일단 사람을 곁에 두고 산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반평생을 같이 산 아내도 의견이 맞지 않는데, 어데서 본 적도 없는 이방인이 불쑥 마을에 머리를 드밀고 들어오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경계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물며 자기의 프라이버시는 보호받고 싶고, 마을 주민의 도움은 원하여 마을에서 적당히 떨어져 홀로 집을 짓는 심보를 모를 마을 주민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말해도 도시에서 살았던 사람은 이해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경계를 짓는 일이 습관이 된 도시인들이 생각나는 시를 봤습니다.
꽃밭의 경계
꽃밭을 일구려고 괭이로 땅의 이마를 때리다가
날 끝에 불꽃이 울던 저녁도 있었어라
꽃밭과 꽃밭 아닌 것의 경계로 삼으려고 돌을 주우러 다닐 때
계곡이 나타나면 차를 세우고 공사장을 지나갈 때면 목 빼고 기웃거리고 쓰러지는 남의 집 됫박만 한 주춧돌에도 눈독을 들였어라
물 댄 논에 로터리 치는 트랙터 지나갈 때 그 뒤를 겅중겅중 쫓는 백로의 눈처럼 눈알을 희번덕거렸어라
꽃밭에 심을 것들을 궁리하는 일보다 꽃밭의 경계를 먼저 생각하고 돌의 크기와 모양새부터 가늠하는 내 심사가 한심하였어라
하지만 좋았어라 돌을 주워들 때의 행색이야 손바닥 붉은 장갑이지만 이 또한 꽃을 옮기는 일과도 같아서 나는 한동안 아늑하기도 하였어라
그렇다면 한낱 돌덩이가 꽃이라면 돌덩이로 가득한 이 세상은 꽃밭인 것인데 거기에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아무 욕심이 없어졌어라
나와 나 아닌 것들의 경계를 짓고 여기와 여기 아닌 것들의 경계를 가르는 일을 돌로 누를 줄 모르고 살아왔어라
꽃밭과 꽃밭 아닌 것의 경계는 다 소용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경계를 그은 다음에 꽃밭 치장에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어라
마지막 연에 이르러 "경계는 다 소용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경계를 그은 다음"에 꽃밭 치장도 나쁘지 않다는 습관에 다시 빠지는 시인의 모습에서 쫓기던 노루가 뛰던 걸음을 멈추어 뒤돌아보는 습관을 못 고쳐 포수의 총에 맞았다는 옛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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