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역사가 되는 오늘. 전우용 지음. 21세기북스 간행 7

무주이장 2023. 12. 3. 18:54

  세상을 보는 눈은 같지 않습니다. 선생은 토지사유권과 토지공개념에 대한 글을 쓰면서 토지를 이용한 ‘사익 추구’는 많든 적든 ‘공공의 손실’을 유발하기 마련이라면서 ‘토지공개념’은 사유재산에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사유재산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말에 동의를 하시는지 그렇지 않은지 여러분의 생각을 묻습니다.

 

  누군가가 사유재산 토지에 초고층 건물을 지으려고 합니다. 허가신청을 하면서 그가 내세우는 개발논리는 여기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주변 지역의 개발이 촉진되고, 인구가 유입되며,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주변 상권이 강화되어 인근의 부동산 가치가 상승된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에 대하여 개발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주거 인구가 늘어나고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교통이 악화되고 주변 환경이 악화된다고 주장합니다. 주거 환경이 불량하면 기존 주민의 생활환경이 악화되므로 이들에 대한 공적 배상 또는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주장에 동의하십니까?

 

  토지는 무한정 있는 재화가 아닙니다. 아무리 토지의 사유권을 절대적 권리로 인정한다고 해도 이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것이 토지공개념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개발의 욕망은 개발 지역 주변 사람들의 욕망에도 부응하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 이들 욕망을 자극하는 방법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누구의 욕망을 자극하는가입니다.

 

  청계천 복원공사를 할 무렵, 청계천은 시민단체들이 원하는 방식과 형태로 ‘복원’된 게 아니라, 이명박과 청계천변 지주들이 원하는 방식과 형태로 ‘개발’됐습니다. 오세훈은 이명박의 정신을 계승했고, 이명박처럼 되려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무시하고 지주와 토건업자들의 시선으로 서울 땅과 강을 본 게 이명박-오세훈 정신이었다고 선생은 주장합니다. 반면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사람들에게 이견을 조정할 시간과 기회를 충분히 주는 것, 더불어 가급적 약자 편에 서는 것이 박원순 정신이라고 선생은 설명합니다.

 

  저는 이십 수년을 토지개발을 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Developer라고 불리는 직종이었는데, 아파트를 개발하거나 골프장을 개발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개발업무를 하면서 주변의 사람들과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을 숱하게 했습니다. 그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한숨도 쉬었지만 그들과 타협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공무원들이 개발지역 주민들의 민원에 너무 동조할 때는 섭섭하기도 했지만 법에 따른 절차를 지키는 일에는 공무원들의 조정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저는 토지공개념을 지지하고, 박원순 정신을 존중합니다. 그것이 개발이 끝난 후 분양을 하거나, 운영을 할 때 이웃 주민들과 여전히 대화를 하고, 술잔도 나누는 여유를 준 것을 기억합니다. 오늘도 개발이 예정된 지역 여기저기에는 현수막이 나부낍니다. 붉은 페인트로 ‘죽음’ ‘사수’ 등의 살벌한 단어가 바람에 휘날리지만 막상 그들과 만나 대화를 할 때 사업주나 지주를 조금만 설득하면 무난히 사업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발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는 일은 그래도 쉬운 일이지만 사업주나 지주를 설득하여 그들에게서 개발 이익을 조금 덜자는 협의는 정말 어렵습니다. 개발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또는 다른 방법이 없어 개발 이익의 일부를 덜어주기로 결론이 나더라도 그 원한은 남아 개발 업무를 담당한 저에게 사업주는 원망을 퍼붓습니다. 그 꼴 한참을 보고 살았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어떤 일에 연루되어 그렇게 생을 끝마쳤는지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누구 말이 사실이든 그가 최후의 선택을 했던 이유는 그의 기준에서 정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 기준을 제가 살았던 기준으로 보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박원순의 정신을 지키며 서울시를 개발한 시장의 결단은 개발시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드문 일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가 가진 토지개발 기준이 그러한데, 그를 함부로 재단하여 비난하는 것은 조심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가 어떤 부끄러움으로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저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서 드리는 말입니다. 죽기보다 싫은 부끄러움을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니 욕심 많은 사업주의 이익을 위하여 개발 업무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선생의 글을 읽다가 인생 고백이 되었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