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 정보라외 19인 지음. 현대문학 간행

무주이장 2023. 11. 26. 21:58

 한국과학소설을 모은 소설집입니다. 정보라 작가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 도서관에 있는 작가의 책을 검색하다 찾은 책입니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회원 20명의 작품을 모았습니다. 작가들의 상상력을 따라가다가 지치기도 해서 잠깐 쉬었지만 다 읽었습니다. 모든 작품이 창작의 힘든 과정을 겪고 나온 이야기이지만 세련되지 못한 듯 읽기에 힘이 들기도 한 것은 작품의 질이 낮아서가 아니라 단지 저의 호불호 때문일 것입니다. 20편의 글 중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이 마음에 가장 깊이 남았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보수화되고 차별이 일상화되며 민주주의가 퇴조하진 않는지 불안합니다. 왜 우리 사회는 매년 조금은 더 인간적이고 진보적이며 민주적으로 변하지 못할까 아쉬웠는데, 그 이유가 황 작가가 상상한 음모론 때문이 아닐까 공감을 했습니다. 하지만 작가도 인정하고 있지만 현실의 불안을 감당하면서 당당히 맞선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우리가 이룬 민주주의 사회의 형틀이 허약한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저항과 반발이 법의 지원으로 버틸 수 있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일본징용자들의 배상을 정부가 대위변제하겠다는 억지는 민법상 채권양도는 채권자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법원이 저지했고, 일본 정부가 우리의 법원 판결에 간섭하는 작태를 보이고 우리 정부가 벨도 없이 일본 정부의 대리인인 듯 행세해도 우리 법원은 법과 양심에 따라 옳은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가짜 뉴스를 막겠다며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내부적인 반발과 탄핵의 벽에 막힐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은 우리 사회가 한 세력이 독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웅변이라고 저는 봅니다. 사설이 긴 이유는 황모과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시면 이해가 될 듯도 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몇 쪽 되지 않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시대 지체자와 시대 공백. 황모과 지음

 

 이야기의 배경은 미래입니다. 과거 살았던 사람들이 지체되어 미래로 불리어 옵니다. ‘일종의 냉동인간’으로 존재하다 해동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타임 슬립을 이용해서 데리고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시대를 지체하여 과거의 나이를 그대로 지니고 미래로 소환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딸의 나이보다 젊은 아버지가 되기도 합니다. 이들이 제일 먼저 오는 곳은 미래복지부 긴급구호사업 파트너 회사의 스마트보디 갱신센터입니다.

 

 갱신센터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시간 감각이 정체된 연유로 이 시대의 모든 존재와 불화하는 사람들로 분류가 되어 미래에 적응할 수 있는 스마트보디를 제공받습니다. 스마트보디로 갱신하면 이들은 불화를 극복하고 현실에 적응을 하게 됩니다. 단 먼저 이들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동의를 받기 위하여 AI가 아닌 사람이 갱신센터에서 직접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며 상담을 합니다. 상담결과 동의를 얻어 스마트보디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부동의자도 많습니다.

 

 상담원은 부동의자의 과거를 검색하다 이들이 모두 당대의 테러리스트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상담원을 퇴직하고 조사한 기록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1923년 간토대지진 불순 조선인 우물 독 살포 사건. 1947년 제주 남조선 로동당원 선동 폭동 사태. 1980년 5월 구 빛고을 남파 간첩 대규모 테러 사건. 1987년 6월 반사회적 개헌추진 세력 서울역 점거 사건. 2016년 무차별 촛불 테러 사건.....

 

 퇴직한 상담원은 2130년 자기가 과거 다녔던 회사 사무실에서 눈을 떴습니다. 상담원은 그에게 확약서에 사인을 종용합니다. “이 시대의 일원이 되겠다고 확약서만 쓴다면 바로 시술을 집행합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허약할 정도로 평범하고, 최저임금도 못 받으며, 구세대 관리인들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도 찍소리도 못 내던 자신이 왜 미래로 소환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의 손에는 퇴직할 때 작성했던 테러리스트와 관련된 사건 기록이 정리된 노트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구시대 구세대의 사람들이 미래에 존재하고, 당대의 테러리스트들이 미래로 불려 오는 이유는 미래사업부가 기획한 역사전복사업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음모론, 일리 있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