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역사가 되는 오늘. 전우용 지음. 21세기북스 간행 5

무주이장 2023. 11. 26. 19:30

젊은 남성들의 ‘반동화’, ‘보수화’는 사실인가?

 

 음식점에서 자칭 페미니스트 여성이 옆 테이블의 남성에게 먼저 도발을 하고는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발을 했던 사건이 기억납니다. 20대와 30대 젊은 남성들이 들불처럼 분노를 태웠지요. 연세대학교였나요?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집회를 해서 자기들의 수업권을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지요. 젊은이들이 ‘반동화’, ‘보수화’ 되었다는 말들이 여기저기 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를 심리적으로 분석하기도 하고, 경쟁이 치열한 신자본주의 체제를 탓하기도 합니다. 역사학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궁금했습니다. 마침 선생의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에도 소개를 했지만 일본 천황제 군국주의가 ‘현모양처론’을 만들어낸 건 남자들을 가정에서 빼내어 천황에게만 충성하는 ‘공민’이자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선생의 주장입니다. 가정일은 여자들에게 맡겨두고 오직 천황과 국가의 일에만 매달리는 남자가 되라는 거였죠. 따라서 현모양처의 짝은 충신열사나 애국열사였답니다. 현모양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가정일에 신경 쓰는 남자들은 ‘못난 놈’이나 ‘공처가’ 취급을 받았습니다. 40대 이상의 남자에게는 익숙한 이데올로기일 것입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는 말을 할머니나 어머니에게서 들은 세대입니다. 기억나시나요?

 

 그런데 지금의 20~30대는 ‘현모양처론’이 소멸한 세상에서 성장한 사람들입니다. 부엌에는 무시로 들어가 아내를 도와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고, 장남에게 모든 가정의 자원을 몰빵하고 나머지 자식들은 교육을 못 받았다고 하면 미개한 원시사회를 상상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남자 초등학생들이 ‘교실 내 남학생 차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고 선생은 설명합니다. 아직 학생이거나 직장 초년생인 그들은 사회에서 ‘남자로서의 기득권’을 누려본 적이 없고 오히려 여자 동기들보다 취업도 늦고 직급도 낮습니다. 그들의 분노는 ‘가정 내 불평등’과 ‘공적 권리의 불평등’은 현격히 줄었지만 ‘공적 책무의 불평등’은 여전한 현실에 말미암은 바 큽니다. 그들은 ‘남자로 태어난 기득권’을 누려본 적이 없는데도 군 복무나 ‘위험한 공적 책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 옹졸하거나 치사한 인간으로 취급받는 상황에 억울함을 느낍니다. 지금의 20대~30대 남성들의 ‘반 페미니즘’ 의식을 ‘보수화’나 ‘반동화’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라고 선생은 주장합니다.

 

 선생의 대안은 분명합니다. 낡은 세대와 함께 사라져 가는 담론이 있고, 새로운 세대와 함께 성장, 발전하는 담론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좋은 정치가 대안이라고 주장합니다. 좋은 정치를 하려면 지금의 성평등 담론을 넘어서는 새로운 담론, ‘권리의 평등과 의무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담론, 가정과 사회 모두에서 평등한 관계를 이루는 담론을 만들어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 걸 제시하지 못하고 낡은 세대에게 필요한 이론을 젊은 세대에게 적용하려 들기 때문에 젊은 남성들이 ‘반동화’, ‘보수화’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살아온 경험이 다르면 세상에 대한 인식도 다르기 마련입니다. 젊은 세대에게 기성세대의 경험에 따른 논리를 강요하는 걸 ‘꼰대짓’이라고 합니다. 성평등 담론이라고 해서 ‘꼰대짓’의 예외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선생은 늙은이들에게 당부합니다.

 

 ‘풍요중독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사는 젊은이들이 행복해지려면 경쟁을 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하고, 신자본주의가 만든 구조적 문제는 체제를 보완하고 수정해야 할 일입니다.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형성한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꼰대가 살았던 잣대를 들이대고 강요하는 짓은 역사를 알아야 고쳐질 듯합니다. 고친 사례가 제법 있을 겁니다.

 

P.S. 하나, 한때 늙은이를 공경하는 것이 미풍양속을 넘어 노인의 권리라며 젊은이들에게 강요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며 강요하던 늙은이들이 비난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임신한 여성을 먼저 보호하지 왜 죽어가는 늙은이를 먼저 보호해야 하느냐는 공분이 일어났습니다. 전국노인회장이라고 기억하는데, “단지 나이가 들었다고 존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존중받을 행동을 해야 존중받을 수 있다”라고 기고를 했습니다. 꼭 그것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노인의 태도가 변했습니다.

 

P.S. 둘, 장남이 가난한 집의 자원을 모두 가져가, 나머지 형제나 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못 받고 공장으로 돈을 벌러 나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성공한 장남이 동생들을 잘 건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혼을 하고는 자신의 집안을 팽개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잘 사는 유력한 집안에 장가를 든 경우 더 그랬습니다. 형제들 간 불화의 원인입니다. 그런데 형수가 어머니나 아버지를 무시, 차별, 학대를 하면 그 형수는 십 원짜리 욕을 들었습니다. 아무리 아버지나 어머니가 말리고 형이 나무라도 그동안 억울했던 형제나 누이는 형과 형수에게 삿대질을 하고 욕설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경우 차별받았던 동생들을 응원합니다. 양쪽이 다 잘못되었다고 양비론을 들이대면 저도 모르게 흥분을 합니다. 그런 세상을 살면서 생긴 저의 정의 관념입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