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정리한 노트
저에게 병이 하나 생겼습니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가족이 뉴스의 중심에 나오면 지금처럼 힘 있고 건강하고 젊고 예쁜 모습이 아닌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이 자꾸 상상이 됩니다. 예를 들면 법무부 장관의 부인이 봉사활동을 하는 사진을 본 경우인데, 직업이 변호사이고 젊고 멋있는 모습의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변해 남편 탓에 아내와 자식들이 법적, 사회적으로 도륙되는 상황을 상상하는 병입니다. 가슴이 저리도록 아픈 가족의 비극에 시시덕거리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을 상상하는 끔찍한 병입니다.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지만 세상인심이란 게 잔인하고, 지금 어떤 권력을 가진 사람이든 불문하고, 그가 믿을 사람은 어디에도, 아무도 없을 수 있으니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 란 법은 없습니다.
“퍼붓는 폭우를 같이 맞으며 위로와 격려를 해준 시민들, 벗, 친구, 동지들 덕분에 견디고 버틸 수 있었다.” 저자가 감사말을 전한 대상에 저는 아마 포함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저자의 책을 읽고 그의 세계관과 정치적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의 고통에 아파한 기억도 있지만 그보다는 세상인심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생생하게 본 기억이 더 잊히지 않습니다. 검찰개혁에 반대하여 시작한 후, 장관직을 사퇴하면 아무 일이 없을 것이라며 협박하던 검찰이 기억나고, 그에 편승해 한 사람을 조리돌림하던 신문, 방송쟁이들이 기억납니다. 잘못을 비판하지 못하고 세상인심에 편승해 조리돌림을 방치했던 정치인들을 포함한 사람들도 잊지 못합니다. 진보를 자칭하는 신문, 방송, 정당, 정치인은 믿을 게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려울 때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다고 하는 진리는 고스톱만 쳐봐도 아는데 당시도 그렇고 세월이 흐른 지금도, 아마 세월이 흐른 후 미래도 그들은 믿음의 대상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눈을 가리고 한 손에 저울을 들고, 다른 손에 칼을 쥔 법(정의)의 신, 디케입니다. 법학을 배우면서 디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후 잊었던 이름입니다. 제가 1981년 공부하던 법은 책과 현실이 좀체 일치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저자는 책의 제목을 ‘디케의 눈물’이라고 정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시대를 정리한 노트라고 인식했습니다. 친일 반민족행위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윤석열 정권이 시작된 전후의 상황은 이 책을 보면 이해될 듯합니다.
역사는 발전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딸을 키우면서 확인했습니다. 그때그때 상황을 볼 때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듯했지만, 세월이 흐른 뒤 달라진 세상을 확인하곤 했습니다. 저는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습니다. 역사를 발전시킨 사람은 기득권을 가지고 떵떵거리던 사람들은 아닌 듯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대항하여 몸으로 싸우는 사람들의 덕이라고 믿습니다. 대항하는 사람들이 그냥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남의 돈 빌리지 않아도 너끈히 살림을 지탱할 수 있고, 세끼 밥만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사람, 철 따라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장관도 해 본 사람이라면 더 좋겠습니다. 아무 말이나 떠벌이며 국민을 무시해도 모를 것이라고 믿지 않도록 “나도 해 봤는데”라고 경험을 얘기하며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는 손가락은 하나지만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은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을 모른 채 떠들던 사람들이 사실은 간판에 의존하고, 패거리들의 비호 아래 살았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 떠벌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의 존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과 대치한 능력 있는 대항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작가 조국에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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