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작가만이 아는 사실이 뒤늦게 나온다거나, 충분한 설명이 없어 무심히 넘겼던 것에 복선을 숨겨놓았을 때, ‘소설 쓰기 참 쉽죠’ 작가를 무시하는 말이 쉽게 나옵니다. 아마 아이가 사서 읽은 책이었을 것입니다. 아이의 책장을 정리하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마음에 두고 제 책장에 두었던 책이었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이 명작 추리물이라고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야기를 같이 읽으면서 우리는 정보를 공유합니다. 등장인물들이 한 명 두 명 나오지만 그들의 정보를 꽁꽁 숨겨놓질 않습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순서에 따라 작가는 정보를 독자와 공유합니다. 단지 고딕체로 강조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나 독자 입장에서는 한 글자라도 쉽게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어떤 복선이 단서가 될 것인지 눈을 부릅뜨고 생각을 집중하며 용의자로 선정했다 혐의를 풀었다 반복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쉽게 노출되는 용의자가 범인은 아닐 것이라며, 그렇게 쉽게 이야기를 풀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기대어 주어진 정보를 해석하며 작가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안광이 지배를 철’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독자라고 점쟁이처럼 아니면 말고 식으로 용의자를 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증거와 상황이 그럴듯해야 합니다.
하루, 몇 시간 만에 다 읽고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을 했습니다. 작가가 숨긴 단서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단서를 연결하면서 구멍이 생긴 것을 메우지 못하고 있을 때 미스 마플은 늘 있던 자리에서 사라집니다. 미스 마플은 보고 제가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책을 놓고는 메모했던 종이를 다시 쭉 일독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을 모두 불러놓고는 당신은? 그럼 당신은? 심문을 다시 했습니다. 그럼에도 미스 마플이 본 것을 여전히 볼 수가 없었습니다.
미스 마플이 본 것을 설명할 때에야 저의 심문 대상에서 빠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그 사람을 불러낼 생각을 못했는지, 저의 안일함에 실망했고, 저의 부족한 집중력을 비판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이라면 등장인물들을 정리하시면서 한 사람을 빠뜨리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미스 마플 같은 훌륭한 인재가 한국에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건은 인간의 욕망이 비뚤어진 증거물입니다. 욕망을 해석하는 것이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관들에게 필요한 자질입니다. 욕망 중에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돈인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다시 찾을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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