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남자가 된다는 것(TO BE A MAN). 니콜 크라우스 소설. 민은영 옮김 3

무주이장 2023. 10. 22. 14:05

나는 잠들었지만 내 심장은 깨어있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 살 때 어머니가 죽은 후 아버지와 딸은 더 이상 죽음을 상대하지 말자고 합의했지만, 아무런 경고도 없이 아버지가 합의를 깼습니다. 합의가 깨진 후의 수습은 딸의 몫입니다. 딸은 텔아비브에 있는 아파트의 열쇠를 받습니다. 그런 것이 있을 것으로 상상도 못 했던 아버지가 살았던 아파트의 열쇠였습니다. 딸은 아버지가 살았던 아파트에서 지내기로 합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젊은 시절을 보냅니다. 젊은 시절, 거칠 것이 없었던 세월을 살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해 낼 수 있다며 자신했습니다. 꿈을 찾고 실현하는 숨 가쁜 시간 속에서도 뮤즈를 찾았고 결혼을 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생기면서 차질을 빚습니다. 아버지는 당황합니다. 아무런 연습도 없는데 생긴 아이가 짐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이를 보는 눈이 다정하다가도 거추장스러워 눈빛이 사나워지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그래도 되는 줄 압니다. 어린아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믿습니다. 아이가 섭섭한 티라도 보이면 아버지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아이조차 이해하리라고 믿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라도요. 아이와 일상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은 조금 시간이 지나 여유가 생기면 봉창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사람 사는 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시간은 총구를 떠난 총알처럼 날아가고 아이는 자랍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실려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잡지 못하고 멍하니 우두커니 지켜보기만 합니다. 아이는 아버지와 공유할 추억이 없고 아버지를 잊었습니다. 그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추상적으로 연결된 사람일 뿐입니다. 가시고기 같은 아버지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가족의 이름으로 지은 이야기는 보이는 것, 말하는 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는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아파트를 찾은 딸의 복잡한 마음이 어떻고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만 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의 마음이 시시때때로, 장소에 따라, 처한 상황에 밀려 변하는 것인데 어떻게 아버지가 항상 가시고기처럼 살며, 늘 아이를 미운털처럼 생각하는 아버지로만 살겠습니까? 아버지가 된 저의 변명입니다.

 

 아버지의 아파트는 딸에게만 개방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이 불쑥 아파트를 찾아옵니다. 혼자 자고 있던 딸은 놀라서 그가 누구인지 묻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함부로 남의 집에 들어올 수 있냐고 묻습니다. 너무도 간결하게 답하는 아버지의 친구는 딸에게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고민이 만만하지는 않다는 것을 짐작합니다. 자기가 평소 쓰던 방을 두고 딸이 사용하는 방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입니다. 자연스레 딸은 아버지의 친구 뒤를 밟고 그가 방문하는 집을 들어가지 못하고, 단지 밖에서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생물학적인 얘기만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동물인 아버지는 경황이 없고 능력이 없어 부양에만 매달리거나,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인생의 목표로 정한 곳을 향해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아버지가 되어주지 못하는 아버지는 이제 인과의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욕망은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이제 노년의 인생에 남은 것은 아내와 아이들입니다. 유독 아이들의 경멸과 무관심의 대상이 된 아버지의 존재가 드러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옛날에는 못난 아버지라도 맞아들여 효도하는 자식들의 이야기가 뜬금없이 회자되어도 되었지만, 이제는 통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세상이 변했다고 억울해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입니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간혹 미운 짓하는 아이들이라도 상처받을 말과 행동은 삼가시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돌아보면 회환이 많은 시간을 저도 살았습니다.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용서를 빕니다. 용서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아 불편한 날이 많아지는 것은 이제 나이 들어 철이 조금 들었다는 증거로 삼습니다.

 

 아이들과 행복한 아버지가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젊을 때부터 그러면 더 좋겠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