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남자가 된다는 것(TO BE A MAN). 니콜 크라우스 소설. 민은영 옮김 2

무주이장 2023. 10. 20. 16:19

 두 번째 이야기는 유대인 남자 이야기입니다.

옥상의 주샤라는 제목의 글인데 주샤는 랍비 이름입니다. 주샤가 우크라이나의 한노필(이디시어로 ‘아니폴리’)에 정착한 후 그의 주위로 정통파 유대인들이 모여 하시딤이라는 영적 부흥 운동과 이를 따르는 유대인 공동체가 생겼다는 주석을 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옥상에서 새로운 유대인 공동체를 만들 랍비 주샤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50년간 교수로서 살았던 주인공은 2주 동안 병원에서 죽어 있었는데 다시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는 장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후 합병증으로 양측성 폐렴에 걸려 회복할 수 없으며 죽을 것이라는 의사들의 확정적인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있던 그날들에 딸은 손자를 낳았습니다. 지옥의 문 앞에서 기다리던 주인공은 자신이 살았던 날들에 미련을 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일은 슬픈 일이었고, 허비한 인생의 무대로의 복귀였습니다. 그는 지옥문 앞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던 것일까요?

 

 그의 삶은 의무로 찌들었습니다. 이미 랍비들이 정경 성경의 범위를 확정하면서 역사는 이미 차고 넘쳤으며, 유대인에게 다른 역사는 필요하지 않은 것을 알았으며, 랍비들은 오로지 유대인의 기억에만 매달렸고, 이천 년간 그 기억이 민족 전체를 지탱했음을 알아채고는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 배를 흔들겠는가? 자문자답하며 무기력한 학문적 한계를 알았습니다. 50년을 공부했던 학문의 집대성은 이미 불가능했고 그로 인해 자기 삶의 의미가 애당초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딸들의 아버지로서 어떤 존재 가치도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는 가족들과 유리된 채 학문에만 몰두했습니다. 일상의 공유가 불가능했던 아버지는 딸들이 자기에게 가진 감정이 경멸과 무관심이란 것을 늦게 알아챕니다. 그런 그가 지옥문 앞에서 불행히도 돌아와서 본 것은 태어난 손자에게 유대인의 전통에 의해 할례를 준비하는 광경이었습니다. 그의 굴레가 손자에게 대물림되려고 합니다. 그가 손자에게 씌울 굴레를 피해 올라간 곳은 옥상입니다너만은 유대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구속과 의무에 가두지 않겠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안고 결심합니다. 그는 그를 경멸하고 그에게 무관심한 가족들이 사랑하는 아이에게 굴레를 씌우는 짓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 변명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랍비 주샤의 성공을 훔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막다른 골목과도 같은 옥상은 찬바람만 불고 있을 뿐입니다.

 

 남자가 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의무에 찌들어 사는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의무의 굴레를 벗어 던질 것을 갈망하는 것이라는 이율배반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남자들은 어떤가요? 지금은 고인이 된 이병주 선생은 여성들의 발언권이 세지는 세월을 보면서 남자들을 가정에 가두지 말라고 충고하였습니다. 남자는 가정보다 넓은 세상에서 할 일이 많다고 하면서요. 부질없는 충고입니다. 남자들이 지금 굴레를 쓰고 힘에 부쳐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됩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