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전우용, 그를 안 것은 그가 출연하는 방송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자가 묻는 어떤 말에도 거침없이 기원과 출처를 알려주고,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정확한 용례와 잘못된 용례를 드는 해박함에 놀라서 그가 쓴 책을 읽으면 나도 상식이 늘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을 부려 고른 책입니다. 개가 달을 보고 짓는다는 말인데, 달이야 원래 항상 언제나 그 시각에 그 자리에서 뜨고 지는 것인데 개가 달을 보고 짓는 것은 어떤 연유일지 궁금했습니다. 그 궁금증을 하나씩 같이 해결하는 의미로 정리할 생각입니다.
독직
보통 직업을 한 단어로 쓰지만 본래 직과 업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직은 하늘이 사람에게 맡긴 일입니다. 그래서 천직입니다. 반면 업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생업입니다(단어 뜻 속에 철학이 보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하늘의 완벽한 질서와 조화를 지상에 구현하는 게 정치라고 믿었습니다. 지고지선하고 공평무사한 하늘의 뜻을 받드는 일이 ‘직’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직’과 ‘관직’이 있을 뿐, 사직이나 민직은 없습니다. 공에 대립되는 글자가 사私고, 관에 대립하는 글자가 민民입니다.
직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받드는 겁니다. 그래서 봉직이라고 합니다. 직이라는 글자에 귀(耳)와 소리(音)라는 글자가 들어간 것도, ‘하늘의 소리 = 민심’에 늘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일 겁니다.
하늘이 맡긴 직책을 모독하는 짓을 ‘독직(瀆職)’이라고 합니다. 검사나 판사가 예전 선배였던 변호사를 위해 유죄를 무죄로 만들어 주거나 무거운 죄를 가벼운 죄로 바꿔주는 짓이 관행이 된 지 오래입니다. 자기가 미래에 더러운 부를 축적하기 위해 현재의 뇌물을 권장하는 거죠. 이런 걸 ‘전관예우’라고들 하는데, 예禮는 이렇게 더러운 짓에 써서는 안 되는 글자입니다. 이런 짓은 ‘법을 뒤틀어 자기 직을 모독하다’라는 뜻의 왕법독직(枉法瀆職)이나, ‘자기 직책을 모독하며 법을 희롱하다’라는 뜻의 ‘독직농법(瀆職弄法)이라 해야 마땅합니다(언론이 우리말을 훼손하여 원래의 뜻이 망가진 것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시정잡배가 아니라는 언론이 훼손한 단어는 권력을 감시하지 못합니다. 이에 관련된 글은 다른 책을 읽으면서 소개하겠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관직을 받든 자들이 천벌 받을 탐욕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헌부라는 관청이 있었습니다. ‘직을 맡은 자들이 탐욕을 부리면 천하가 재앙을 입는다’는 사실은 왕조시대 사람들도 알았습니다(교과서에서 감찰기능을 가진 사헌부를 외울 때는 글이 따로 놀았는데, 그래서 시험을 치고는 3일이 지나면 다 잊었는데, 선생이 알려주는 대로 익히니 30년은 기억이 될 듯합니다. 학교에서도 따라 배울 일입니다).
독직은 천벌 받을 대죄입니다. 공수처는 자기가 ‘하늘의 신’인 줄 알고 세상을 농락하는 오만한 자들에게 ‘인간다움’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조직과 인력을 적어도 법에 정해진대로 채워줘야 합니다. 한술 밥에 배부를 리 없다지만 공수처를 만든 이유는 공수처가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수처가 검찰의 지방 지검 조직보다 작다는 소식에 선생의 글에 사족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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