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그까짓 것’ 함부로 말하지 마시라. 사람이 맛을 결정한다.
도서관이 요즘처럼 고마운 적이 있었나 싶다. 초등학교 시절, 교실 크기만 한 도서관(도서실이라고 불렀다)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도 놀기 바빴으니 선생님이 시켜서 한두 번 들렀던 도서실에서 책을 빌려 읽는 재미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아예 도서관에 간 기억이 없다. 시립 도서관은 시험기간 공부하기 위한 공간일 뿐이었다. 간혹 책을 빌리긴 했지만 신간은 구경하기 힘들었다. 없는 용돈에 한 달에 한두 권 책을 사서 읽었지만 한 달 동안 써야 할 돈에 비해 책은 하루나 이틀이면 끝이 났다. 대학 도서관에서는 자료나 전질류의 책을 읽었다. 책은 책을 소개한다. 주로 소설, 수필집을 샀다. 지금도 내 책장에 여전히 꽂혀 있다. 고래 힘줄 같은 돈으로 산 책이니 함부로 버리기 어렵다. 거짓말을 보태면 그때 산 책을 펴면 그 시절 그 책을 산 기억이 고스란히 다시 기억난다.
내가 사는 곳에는 도서관이 가깝다. 읽고 싶은 책을 검색하면 십중팔구는 있다. 광고 중인 신간은 찾기 쉽지 않지만 그것은 따로 사면된다. 도서관을 다니면서 소설과 수필집은 이제 주로 빌린다. 아침 출근 전 밥을 준비하고 식사를 하면서 몇 쪽씩 읽는다. 다음 쪽이 궁금하면 저녁에 따로 시간을 내서 읽는다. 책은 금방 다 읽힌다. 매일 읽는 책이 있다는 것은 기분을 좋게 한다. 매일 먹는 음식이 그렇듯 말이다. ‘오늘 뭐 읽지’ 이런 책도 나올 만하다.
작가가 맛본 음식 중 먹어보지 않은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나도 그 음식을 처음 먹었을 때, 감동과 환희를 느꼈을 텐데 그 기억이 다 사라졌다. 요즘은 어떤 음식도 자다가 생각나지 않고, 벌떡 일어나 먹으러 달려가지 않는다. 모든 음식점들이 거의 다 프랜차이즈 매장이라 음식에서 감흥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어디를 가나 비슷한 인테리어에 같은 맛을 주는 음식을 찾아 두 번, 세 번 가기가 어렵다. 짜장면이 중국집마다 다 다른 맛을 주던 때가 있었는데, 집 주위 사장 겸 주방장이 하던 중국집은 다 사라졌다. 프랜차이즈점만 덩치를 키워 살아남았다. 균일성을 강조한 곳에 사람이 사라졌다.
빵집도 그렇다. 동네마다 있었던 빵집의 맛은 다양했다. 값도 싸고 맛도 다양했던 동네 빵집들이 대기업이 하는 프랜차이즈 빵에 스러졌다. 생지만 받아 구워 똑같은 맛을 내는 빵이건만 값만 비싸다. 동네 빵집이 죽으면서 독점이나 과점한 빵은 값을 부풀렸다. 최근 동네 빵집이 다시 생긴다고 하지만, 예전처럼 싸지 않다. 못난 것만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맛이 다시 기억났다. 입에 침이 고이고, 달려가서 먹고 싶었다. 달라진 것은 음식을 소개하는 글이다. 글이 맛있어서 음식의 맛을 다시 기억하고 처음 먹었을 때의 감동과 환희의 모양을 재현했다. 레시피가 가득한 요리책을 보면서 이 음식 맛있겠다. 만들어 봐야 하겠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데, 책을 읽으면서 만들어 보고 싶고, 먹어 보고 싶고, 음식의 냄새가 느껴지고, 혀가 맛을 감지한다. 음식은 만드는 사람과 먹어본 사람의 글과 말과 추억에 따라 다른 맛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한때 다양한 맛을 지닌, 같은 이름의 음식들이 많았던 이유가 있었다.
한때 내가 먹었으나 이제는 그 맛을 잃어버린 이유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했다. 세상은 돈을 전면에 내세운다. 사람은 수단으로 전락했다. 프랜차이즈 점포에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내가 만든 음식을 내가 판다는 자부심도 사라졌다. 그러면서 음식의 맛도 사라졌다.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손맛에 의해 다양해진다. 이 책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에도 맛이 달려있다는 것을 내가 주장할 수 있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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