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들의 ‘1914년 신화’
독일 국민들은 ‘1914년 신화’를 믿었다. 1914년 8월, 전쟁(1차 대전, 유럽에서 저희들끼리 싸웠는데 ‘세계’란 말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이 일어나자 독일 국민이 갑자기 열광적으로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사회 계층, 정당, 종교와 지역으로 나뉘어 오랫동안, 때론 격렬하게 싸우던 분열이 열렬히 타오르는 애국심에 녹아 없어졌다고 한다. 사실이 그럴까? 독일인 전체가 전쟁에 열광했다는 견해는 어떤 의미로 봐도 신화일 뿐이다. 다가오는 전쟁에 실제로 열광하는 신문은 거의 없었다. 전쟁이 진행되고, 좌파의 독립사회민주당과 조국당이 생기면서 독일이 더 분열되었을 뿐이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온갖 정치인들이 1914년의 기억을 들먹였다. 다만 그 기억을 제대로 이용한 쪽은 나치였다. (64~65쪽)
1918년 11월 독일이 패전하면서 패전의 책임은 전쟁을 일으켰던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1918년 8월이 지나자 독일군 최고사령부는 독일 군대가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고, 전쟁을 가능한 잘 끝내기 위한 협상을 하는 게 유일하게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약삭빠른 그들은 1917년 평화결의안의 주창자인 중앙당의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의 애국심에 감정적으로 호소하면서 협상이라는 내키지 않는 일을 맡아달라고 설득했다. 에르츠베르거는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고, 그들 요구대로 휴전 협상을 했다. 우파에게 비난과 모욕을 당한 게 그가 받은 보상이었다. 1921년, 에르츠베르거는 암살당했다. (65~66쪽)
전쟁 패배는 독일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었던 8월이 1918년 11월 같은 몰락(패전 후 베르사유 조약 체결로 독일의 자존심이 몰락하고 독일 경제가 어려워진 것을 말함)의 해결책이라는 게 우파의 생각이었고, 이 생각의 극단적 형태가 나치가 말한 민족공동체, 폴크스게마인샤프트였다. 군대의 최고사령부는 전쟁에 패배한 책임을 1918년 독일제국을 없앤 11월 혁명세력인 민주주의자들에게 돌렸다. 베르사유 조약은 민주주의자들이 군대를 상대로 음모를 꾸민(등을 찌른) 결과라는 개념을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거짓말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1914년 독일 신화’의 실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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