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밭의 풀을 잡겠다고 분무기를 챙기고 제초제를 차에 싣습니다. 물도 충분히 말통에 담습니다. 20리터들이 분무기 한 통이면 될 듯한데, 혹시 또 모르기에 물을 챙깁니다. 차를 타고 밭으로 가는 중에 잘 자라지 못해 시든 호박 구덩이에 모종을 새로 옮겨심기로 작정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나이가 드니 자꾸 깜박 잊어버립니다. 한 번에 두 가지의 일을 챙기는 것이 점점 어렵습니다. 프랑스인들은 이 경우 사우어크라우트 밟으며 자전거 탄다고 한답니다. 그래도 작년과 달리 잡초 제거는 초기이지만 성공하고 있습니다.
코로 구름을 헤집듯 무주에도 용인에도 저 사진을 보여주며 으스댑니다. 세르비아인들의 콧대는 높은 모양입니다. 호박을 키운 것이 횟수로는 여럿이지만 수확을 많이 본 것은 불과 두 번입니다. 헝가리 시골 농군이 저를 보면 암탉만큼이나 알파벳을 잘 안다고 놀리겠지요. 그래도 호박에 관해서는 작은 오리 후후 불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리슬쩍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호박을 키우는 일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당나귀에게 스펀지케이크 먹이기겠지만 그 사람이 내 오렌지 반쪽만 아니라면 상처받지 않을 것입니다.
밭에 서니 오전이지만 이미 뜨겁습니다. 마음과는 달리 게으름을 피웁니다. 뜨거운 죽그릇 앞에서 고양이처럼 서성대기만 합니다. 사실 제초제를 뿌리는 일이 썩 내키지는 않습니다. 밭의 흙을 파면 지렁이가 나오고 땅강아지가 나오고 그래서 흙이 살았구나 느끼면 저도 덩달아 살아있다 느끼지만 농약을 뿌리면 땅속 지렁이가 머리 위에 래디시를 볼 것입니다. 황천으로 간다는 말입니다. 지렁이가 죽으면 땅도 죽습니다. P와 Q를 조심하지 않아 제초제가 호박잎에라도 닿으면 실컷 키운 호박도 죽을 수 있습니다. 정글에서 춤추는 공작새를 누가 보지 않듯이 지렁이와 호박은 제 일을 하지만, 사랑한다고 한 짓이 상대를 괴롭히고 죽이는 저는 사디스트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왕 준비했으니 작업 준비를 합니다. 호박 구덩이 주위의 잔풀을 구와로 정리합니다. 그래야 새우 샌드위치 타고 슬라이딩하듯 제초제 살포가 쉬워집니다.
'매일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글 그림. 김서령 옮김. 시공사 3 (3) | 2023.06.16 |
---|---|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글 그림. 김서령 옮김. 시공사 2 (0) | 2023.06.16 |
더 크래시(THE CRASH). 한문도 지음. 21세기북스 간행 4 (0) | 2023.06.13 |
더 크래시(THE CRASH). 한문도 지음. 21세기북스 간행 3 (0) | 2023.06.11 |
더 크래시(THE CRASH). 한문도 지음. 21세기북스 간행 2 (0) | 2023.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