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817호에서 시인을 소개하는 기사를 봤다. 누군가가 겪었을 폭력을 솔직하게 시로써 표현하려고 했다는 시인의 말에 책을 검색했고 시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를 건졌다. 경진이라는 이름이 등단에 걸림돌 같아서 개명을 했단다. 1988년생인데 개명으로 장애를 제거한다고? 젊은이가 등단을 원했던 이유가 느껴졌다. 발언권을 가지려고? 각설하고…
시집을 여니 새로운 미술관(NEW MUSEUM)이라며 New Art와 New Idea를 위해 1977년 개관했다며 자신의 시를 미술관에 전시한 작품으로 소개를 한다. 시를 읽으러 왔더니 그림을 보라고 안내를 한다. 표 끊고 들어왔으니 다시 나갈 이유가 없다. 이 미술관은 ‘동시대 작품’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며 인종, 성별, 계급 또는 종교나 믿음에 상관없이 차이와 논쟁 다양성을 존중하고 지향한다는 설명에 작품을 보기 전 팸플렛의 마지막부터 찾아 읽는다. 작가의 의도는 마지막에 설명되어 있지 않을까? 예상은 적중이다.
"시는 뭘까?" "글쎄 시가 뭘까? 이미지를 포착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 글씨로" (154쪽)
미술관에 전시된 풍경화는 을씨년스럽다. 인물화는 공격적이고 가학적이고 때로는 피학적이다. 시인은 거짓말을 잘한다고 스스로를 말했다. 그림을 본 사람들이 작가에게 자꾸 물었던 모양이다. “어디까지가 진짜인가?” 작가의 경험은 작품 속에 묻어난다고 말을 한다. 작품을 보면 작가를 알게 된다고도 한다. 그런데 작가는 거짓말을 팔자로 한다고 스스로를 평한다. 그럼 이 작품들의 소재는 자기의 삶에서 나온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없던 일도 아니다. 세상에 하도 흔해서 작가의 거짓말을 작가의 직접경험이나 간접경험으로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다. 역시 각설하고…
미술관 구경을 하면서 작품에 대하여 구체적인 기억은 거의 없다. 단지 한 작품이 크게 기억에 남았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에게 드리는 기도문인지 뭔지 제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림은 생생히 기억난다. 오늘도 집안의 돈만 까먹는 아버지와 날백수 오빠 새끼가 비빌 언덕에서 엄마와 자기의 생살을 뜯기면서, 개차반은 저들인데 어째서 고통의 몫은 엄마와 자기여야 하는지를 한탄하는 그림이었다. 제단 뒤에 일부 배경은 분명 집인데, 집안에는 죽음의 공기가 가득하다. 그림의 한쪽 구석에는 고통받는 욥으로 보이는 사내가 보인다. 욥은 부스럼투성인 피부를 깨진 그릇을 이용해 긁고 있다. 고통으로 타작하여 사랑을 보이시는 하나님을 그림 중앙의 여자는 조롱하고 저주한다. 그러면서 집안의 십자가를 전부 지지 못해 죄송하고 나발 부는 천사의 모습으로 오신 아버지와 오빠를 거두지 못해 죄송하다면 자살은 꼭 밖에서 할 것이라고 하나님의 제단에 오르기를 거부한다. 하나님이 무시하는 엄마가 무서워할까 염려해서 그러겠단다. 하나님은 왼쪽 좁은 공간에서 무기력하다. 제단 위 속죄양은 두 눈 부릅뜨고 하나님과 맞짱을 뜨고 있는 중이었다.
불온하고 불완전한 그림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New Museum에서 차이와 논쟁 다양성을 존중하고 지향한다는 설명에 부합하는 그림을 보면서 장소와 작품, 철학과 그림이 조화를 맞춘 전시를 구성한 큐레이트에게 감탄하면서 나왔다.
감탄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고 사족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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