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빈 옮김. 1984BOOK 간행.

무주이장 2023. 5. 25. 13:50

  세상에는 많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헌신적인 아버지부터 자식들의 등골을 빼먹는 백정 같은 아버지도 있습니다. 양 극단에 자리한 아버지를 두고 그 사이에 자리한 아버지를 분류하기 시작하면 수천 종의 아버지가 가지를 뻗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 수천 종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아버지를 기억하면 대체로 몇 개의 기억만이 회상됩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젊은 아버지, 어린 나를 키우던 겁 많은 아버지, 자식에게 기대하며 늙어가는 아버지, 자식과 나눌 대화가 남지 않은 병약한 아버지, 그리고 침상에서 눈물 흘리며 작별을 하던 나의 아버지. 무한한 힘과 능력을 가졌던 아버지는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작은 거인으로 변했고, 마침내 한계를 드러낸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기억하면 마치 큰 장애물이나 성취를 향한 목표물을 극복해 가는 과정처럼 느껴집니다만 사실 그것은 정확한 기억이 아닐 것입니다. 인생의 장애물이니 목표니 하는 말도 그렇지만 아버지를 떠올릴 때 수식된 말들이 벌써 아버지의 것이 아닌 나의 감정일 뿐입니다. 나의 감정에 겨워 아버지를 잘못 기억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기억을 장식하지 않은 일상의 단어로 담담히 쓴 책입니다. ‘장식이 없는 일상의 단어라는 말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가진 한계를 알기에 오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하하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아버지를 표현하였다는 말입니다. 딸이 아버지를 알게 된 시점부터 마지막 임종까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바로 딸인 작가의 기억입니다. 아마 아버지가 살아 딸의 기록을 보았다면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의 생각으로 현실과 미래를 산 과거를 가지고 있고, 어머니와 딸은 또 그만큼의 과거를 살았기에 그렇습니다.

 

 남자의 자리(A Man’s Place)’는 영어 제목입니다. 프랑스어 제목은 자리(La Place)’랍니다. 아버지의 자리가 된 것은 이 이야기가 딸이 전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옮긴 신유빈 씨도 남자의 자리라고 번역을 하면서 마음이 쓰였다고 합니다. 사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딸의 생각과 모습이 아버지의 이야기 무게와 비슷한 중량감을 전합니다. 아버지와 끈이 연결된 어머니 이야기 또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같은 자리에서 공유한 시간, 갈등, 미움, 섭섭함, 근심 등을 나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얘기하지만 딸과 어머니의 얘기도 들리는 그 자리의 이야기이므로 저는 프랑스어 제목인 자리(La Place)가 더 공감이 갔습니다.  

 

 간혹 작가들이 아버지를 판 이야기라며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 것을 봅니다. 저는 작가들이 아버지를 판 이야기라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문학은 누구의 인생을 팔고 살 수도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인생이 아니에요. 문학은 인생의 불투명함을 밝히는 것이거나 혹은 밝혀야만 하는 것이죠.”(106) 아니 에르노가 진정한 장소에서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를 팔았다고 했던 작가들은 가슴속 어두운 곳에 묵혀 두었던 아버지의 삶과 죽음에 햇빛을 비치고 젖은 이야기를 바람에 말리려고 이야기를 전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분명히 그랬을 것입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