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2023 제46회 이상 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 2

무주이장 2023. 4. 22. 21:58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을 같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아이라고 다를 바 없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픈 마음과 한 없이 미운 아버지가 한 마음속에 존재하는 두 마음입니다. 가시고기 같은 아버지는 한 번도 아이를 미워하지 않았을까요? 생각하기만 해도 그리워지는 어머니는 자녀를 한 번도 미워하지 않았을까요? 양가감정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살면서 익숙해진 그 감정에 스스로 놀라는 모습을 박서련의 , , 마들렌에서도 봅니다. 소설 속의 '나'는 젊은 아이 같은데, 소설을 읽는 '나'는 60이 넘었는데도 그렇습니다. 내 속을 들킨 듯하여 불편합니다.

 

 고아를 수출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애완동물이 아니니 수출에 품위가 있었을 것 같다고 착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팔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닌 사람을 사고파는 일이니 그곳엔 어떤 품위도 없습니다. 거래의 속을 알수록 끔찍한 일들의 연속일 뿐입니다. 부모가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 등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남기는 것이 후환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걱정으로 그냥 버리는 것이 태반이었을 것입니다. 아이를 보내면서 행정적인 수요를 줄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처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곳에 어떤 모양의 애정이 숨겨져 있을까 의심됩니다. 입양된 아이들의 유기된 신원은 뿌리를 찾고, 버린 사람은 숨어서 아파합니다. 서성란이 아는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완성되길 기다립니다.

 

 예나 지금이나(1980년대 직장을 살았던 2022년을 사는 지금을 말합니다) 같습니다. 단지 무대가 사각의 링에서 팔각형의 옥타곤으로 바뀐 것뿐입니다. 크로캅은 2007년의 패배 후, 2015년 재경기를 합니다. 2007년 이미 기억이 되고, 기록이 되었으며, 역사가 된 경기에서 당신은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201540이 넘어 다시 선 옥타곤에서 당신은 재경기를 치릅니다. 이 시대를 사는 크로캅 여러분들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이장욱이 크로캅의 기억과 기록 그리고 역사를 소환한 이유도 저의 기도와 같은 마음으로 보였습니다.

 

 강한 바람이 부는 곳, 강릉의 산불로 피해를 입은 분들이 대피한 곳이 강릉 아레나경기장입니다. 뜨거운 불을 피해 간 곳이 아이스링크로 사용하는 곳이라니 온탕과 냉탕을 왕복하는 피해주민들은 아이러니를 느낄 것 같습니다. 가평의 계곡 어디를 가나 시원한 물이 넘칩니다. 여름 한철이면 어느 계곡이나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그들이 타고 와 주차한 차량들 사이에 경고문이 제자리를 지킵니다. 비가 올 경우 대피를 하라는 내용입니다. 잠깐의 비에도 깊은 산 계곡에서 모인 물은 금방 넘치기 때문입니다. 위험과 오락이 상존하는 그곳을 최은미가 잊지 않도록 알려줍니다. 주관식이라면 답을 하기 어렵지만, 이런 객관식 문항에 모두가 아는 듯 정답을 떠들어대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또 다른 일입니다. 갑자기 씨랜드가 기억나고, 세월호가 떠오르고, 이태원 거리, ‘그곳이 떠오릅니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더 힘들었을 겁니다.

 

 문학의 창을 통한 세상 보기가 문명비판이나 문화비판까지 끌고 갈 능력과 시간이 애초에 없습니다. 단지 민감한 안테나를 장착한 작가들의 시선을 통하여 2022년을 잠깐 둘러보았습니다. 저는 소설을 그렇게 읽습니다. 내년 작품집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