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장편소설, 문학동네

무주이장 2023. 4. 25. 14:31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장편소설, 문학동네

 

 사람과 사람사이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241)

 

 어머니에게서 버려져 해외로 입양을 간 아이가 자기를 낳았던 엄마의 땅, 진남에서 어머니를 똘똘 묶고, 얽었던 이야기를 찾아가는 소설입니다. 타인을 오해하여 미워하고 그래서 비극과 슬픔을 품고 뱉어내는 이유가 사람과 사람사이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 때문이라고 작가는 주장하는 듯합니다. 심연을 건널 수 없다는 절망이 사람에게는 없는 날개를 희망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가질 수 없는 희망은 고문입니다. 절대, 결코 이해의 날개는 가질 수 없다고 작가는 단정합니다(?).

 

사건은 오해를 낳고, 오해는 미움을 키우며 미움은 절망을 만듭니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찾고 싶은 욕망은 또 다른 오해를 낳고 그 오해는 다른 미움으로 사람을 밀어붙입니다.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사가 신파나 희극이라면 그래도 볼만 하지만 비극은 별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입니다.

 

 다행히 이런 이야기의 전제는 살아있는 사람에 한정됩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없습니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욕망, 입을 틀어막아도 새어 나오는 절망, 가슴을 찢을 듯한 상실의 아픔, 남의 삶을 파탄 낼 미움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만약 죽은 사람에게조차 심연이 있다면 좁은 묘지 속에서 고통을 견디는 것이 너무나 끔찍하지 않겠습니까?

 

 죽은 지은은 입양간 딸 카미라, 한국 이름, 희재에게 말합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아이를 버리고 싶어 버린 건 아니라는 얘기라서 덜 비극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습게 시작된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