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2.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문학동네
자전거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자전거에 대한 추억은 빛이 바래도록 오랜 기록입니다.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하시던 외삼촌 댁에는 귀한 어린이용 자전거가 있었습니다. 그 자전거로 넘어지지 않고 타는 법을 배웠습니다. 걸어서 한 시간 이상이 걸리는 곳을 일요일 일찍 걸어가서는 하루 종일 사촌들과 자전거를 탔습니다. 페달을 밟느라 사타구니는 발갛게 달아올랐고, 밤새 끙끙거렸던 기억도 납니다. 이제는 고향에 가더라도 아파트와 차들로 번잡한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다닐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작가의 글을 읽고는 자전거를 소환합니다. 그 자전거를 타고 제 어릴 적 고향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보려고요.
부산시 북구 금곡동 공창마을, 범어사의 뒷산인 금정산을 넘으면 낙동강을 앞에 두고 있는 마을입니다. 100호쯤 되는 마을이니 작은 마을은 아니지요. 하지만 전후좌우 마을을 둘러싼 농경지는 배산임수의 틀속에서 쪼그라들었고 생기다 말았습니다. 보리고개를 넘는 마을 사람들의 가난한 풍경은 어린 기억에는 없습니다. 단지 아이들이 월사금을 달라고 보채면 삽작문 너머로 책보따리가 날아가고, “학교는 무슨, 가서 나무나 한 짐 해라.”는 아버지의 호통이 소리만 큰 채, 삽작문을 넘지 못하곤 했다고 하니, 아무래도 가난이 일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해도 살림이 늘지 않으니 아이들의 월사금이라도 벌 양, 노름판에 끼어들었겠지요.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지나가면 보는 눈들이 상냥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돌담이 이어져 집들이 들어선 골목으로 자전거는 지나갑니다. 핸들을 잡아 벌어진 어깨가 좁은 돌담에 걸릴 듯도 하지만 그냥 착각입니다. 돌담길을 지나다 눈이 마주치면 “범서댁 손자냐?” 아는 체 인사를 건넵니다. 등마와 골마는 서 씨와 강 씨의 세거지로 구분됩니다. 골짜기에 들어섰다고 골마라고 부르고, 등성이에 있다고 등마로 불렸습니다. 골마는 장마 때가 되면 물피해를 염려해야 합니다. 등마에서 골마 쪽으로 자전거의 속도를 높여 지나면 마을이 끝나는 곳, 산과 만나는 곳, 동쪽에 위치한 금정산이 품었다 내뿜는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내가 나옵니다. 완만한 계곡을 형성한 내는 곧장 낙동강으로 빠져갑니다. 지겹도록 긴 여름날이면, 아이들은 모여서 논길을 따라 익지 않은 떨감을 씹으며 멱을 감으러 가곤 했습니다. 냇가에서 식힌 몸은 마을로 돌아오는 중, 다시 뜨거워져 마을과 내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고 가곤 했지요. 자전거로는 갈 수 없는 논두렁길입니다.
마을 경계를 넘으면 이발소가 있던 호포 마을이 나오고 거기에서 시작되어 양산까지 뻗은 둑길을 마음 놓고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간혹 동네 녀석들이 어디서 왔냐며 텃세를 부릴 수도 있겠지만, 둑길에는 매인 염소만 보일 뿐입니다. 가다 지치면 자전거를 세우고 적당히 기운 둑길에 누워 낮잠을 청하렵니다. 석양빛에 놀라 깨고는 다시 강을 옆에 끼고 집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을 하겠지요.
책을 읽다 그만 지금은 변하고 없어지기도 한 기억 속의 고향길을 다녀왔습니다. 자전거와 여행,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차에 자전거를 싣고 언젠가는 여행을 갈 겁니다. 그때까진 책으로 즐기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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