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마음을 먹고 돋보기안경을 챙겨야 그나마 조금 수월합니다. 4단 정도의 낮은 서가에서 작은 글씨로 쓴 도서분류목록을 읽어내는 것은 굳은 근육도 쉽게 허락하지 않아, 엉거주춤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관심도서목록에서 책의 위치를 확인하는 메모지를 출력하여 2층으로 올라갈 때는 책을 쉽게 찾을 것 같아서, 돋보기안경도 없이 올라가지만, 한참을 헤매다 끝내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하고 마음을 돌려 먹었습니다. 서가를 여행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책을 고르겠다고요. 제 기억 만으로도 제목만 보면 쉽게 읽고 싶은 책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은 10분이 지나고 눈이 침침해지면서 스러져갔습니다. 지쳐 돌아서는 눈길에 보이는 책, 그래서 서가에서 뺀 책이 ‘자전거 여행 1’과 ‘자전거 여행 2’였습니다. 김훈 선생의 책이라는 기억이 호출되었습니다. 쉽게 읽힐 것으로 기대했지만 자전거로 고갯길을 올라가는 것 마냥, 종내 읽는 것에 속도가 붙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첫 권을 읽었습니다.
52살의 여름에 김훈 선생은 책을 완성한 후, 자신의 자전거 ‘풍륜’이 늙고 병든 말처럼 다 망가졌다며,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값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라고 호객(?)합니다.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것이 아닌데… 후회가 들었지만, 세월이 이미 흘러 새 ‘풍륜’도 장만하고, 월부도 완불했을 것으로 짐작하면서 슬그머니 작가의 글에서 눈을 뗍니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거나, 기록을 경신하는 분들은 제 주위에도 찾으면 제법 있습니다. 그런 분을 따라 하겠다고, 그래서 오른 살집도 조금 빼겠다고 성복천과 탄천을 오르내리던 즐거움은 단 한 번의 추돌사고로 끝이 났습니다. 번잡한 자전거 도로에서도 여유와 사색을 즐길 줄 알았는데…60살이 넘은 다리에 어린아이의 상처 딱지를 붙였습니다. 그래도 노욕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간혹 무주 구천동의 계곡을 따라 놓인 둑길을 보면, 자전거를 여기 어디쯤 두고 한 번씩 타야겠다는 욕망이 솟구칩니다. 제 차 트렁크에 자전거를 싣고 여행을 하다 한적한 시골길이 보이면 자전거를 내리는 꿈은 계속 가지고 있으려고 합니다.
씩씩거리고, 오늘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했는가 무용담 일색인 블로그의 자전거 여행기가 아니라서, 읽기에 아마 힘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라이더가 가진 체력과 기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 길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내느라 그래서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에 같이 웃고 울고 손잡고 어깨 거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2004년에 이 책을 사서 읽었다면 조금은 쉬웠을까요? 2023년 4월의 봄을 살아내기에 자꾸 힘든 생각만 드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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