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진화의 산증인, 화석25. 도널드 R. 프로세로 지음. 뿌리와 이파리 간행 5

무주이장 2023. 3. 23. 13:12

절지동물의 기원: 할루키게니아

 

  브리티시컬럼비아 필드 근처의 로키산맥에 위치한 버제스 셰일은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화석 발굴지 중 한 곳이다. 1989년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의 베스트셀러인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를 발표했다. 책 내용의 대부분은 버제스 셰일의 놀라운 화석에 대한 묘사와 휘팅턴, 브릭스, 콘웨이 모리스의 연구가 이 생명체들의 특성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얼마나 바꿔놓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었다. 또 굴드는 월컷이 멸종동물들을 현존하는 문에 억지로 욱여넣으려는 실수를 어떻게 범했는지도 짚고 넘어갔다. 버제스 셰일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은 생명이 캄브리아기에 서서히 피어나면서 다양화되고 팽창한 것이 아니라, 캄브리아기 중기에 이미 체제의 수와 형태에서 최대 범위까지 도달했다가 데본기에 소수의 생존자들(절지동물, 연체동물, 그 외 다른 것들)만 남기고 절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굴드는 더 중요한 점도 강조했다. 그에게 버제스 셰일은 우발성contingency, 즉 생명체에 우연히 일어난 운 좋은 사건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이런 우발적 사건은 뒤따라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결정한다.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나서 척추동물도 수많은 실험적 동물과 함께 캄브리아기에 사라졌다면, 생명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확실히 공룡은 없었을 것이다. 포유류나 인간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무작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가져온 멕시코 소행성 충돌과 엄청난 규모의 인도 용암 분출이 6500만 년 전에 공룡을 쓸어버리지 않았다면, 포유류는 12000만 년 동안 이어져 온 공룡 시대 때의 모습에서 조금도 커지지 않았을 것이고 인간도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유기체는 오랜 진화의 필연적인 산물이 아니라, 여러 번의 대멸종과 다른 우연한 사건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생물들의 후손이다.

 

  월컷은 가장 해석이 어렵고 가장 기이한 버제스 셰일의 화석 중에서 어떤 꿈틀이 벌레하나를 다모류에 해당하는 속인 카나디아Canadia로 분류했다. 콘웨이 모리스가 1977년에 이 화석을 할루키게니아Hallu-cigenia라고 다시 명명했는데, 악몽 속에서나 보일 법한 환영hallucination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곤충, 거미, 전갈, 갑각류, 만각류(거북손, 따개비 따위가 포함된 무리), 투구게, 삼엽충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문인 절지동물문에 속한다. 우리는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어떤 식의 평가에서도 지구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동물은 언제나 절지동물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전체 종 다양성에 대해 그다지 대단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면, 풍부도를 보자. 절지동물은 번식이 빠르기로 유명하며, 조건이 맞으면 기하급수적으로 개체수가 불어난다(방제를 하지 않으면 한 쌍의 바퀴벌레는 단 일곱 달 만에 1640억 마리로 불어날 수 있다). 또 절지동물은 대단히 적응력이 뛰어나서, 몸집이 큰 동물에게만 허용된 곳을 제외하고 지구의 거의 모든 틈새를 차지할 수 있다. 절지동물은 하늘을 나는 것도 있고, 민물에 사는 것도 있고 바닷물에 사는 것도 있다. 영하의 온도부터 물의 끓는점에 가까운 온도에 이르는 극한의 온도를 견딜 수도 있다. 이런 적응성의 비결은 절지동물의 구조에 있다. 절지동물은 모듈식 생명체다.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체절은 추가나 제거가 쉽고, 형태를 변형할 수도 있다.

 

  절지동물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몸의 바깥쪽을 단단한 껍데기인 외골격이 덮고 있으며 그 안에 부드러운 조직과 근육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단한 껍데기는 자라지 않기 때문에 절지동물은 가끔씩 탈피를 해야 한다. 절지동물에게 탈피는 중요한 제약이다. 탈피를 하려면 몸집도 작아야 한다. 절지동물은 어느 정도의 크기에 도달하면, 더 이상 크게 자랄 수 없다. 만약 몸집이 그렇게 더 커지면 중력이 당기는 힘이 증가해서 젤리처럼 녹아내릴 것이다. 만약 거대한 개미나 사마귀가 등장하는 저예산 공포 영화를 보게 된다면, 그런 괴물이 존재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웃으면서 봐도 된다.

 

  탈피는 많은 동물의 배발생과 체제에서 대단히 기본적인 특징이기 때문에 이들이 모두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실제로 탈피를 하는 동물들(절지동물, 유조동물(우단벌레), 선형동물, 완보동물 따위)의 문을 아우르는 하나의 큰 무리를 탈피동물Ecdysozoa이라고 한다. 동물의 DNA와 다른 분자 체계는 최근 몇 년 동안 면밀히 연구되어 왔다. 과연, 탈피동물들 사이에는 독특한 DNA 서열이 공통적으로 나타났고, 그들의 가까운 유연관계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다른 분자적 유사성도 있었다.

 

  원시적인 절지동물과 엽족동물의 작은 각판은 캄브리아기 가장 초기의 두 지층인 네마키드-달디니아조와 톰보티아조의 지층에서 둘 다 알려져 있다. 아트다바니아조 지층에서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일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캄브리아기에는 삼엽충이, 그다음 실루리아기에는 최초로 육상에서 지네와 전갈과 곤충이 등장하면서 절지동물은 크게 번성한 반면, 엽족동물은 데본기에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그 전의 어느 시기에 그들의 후손인 우단벌레는 땅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연한 몸을 가진 엽족동물은 화석화될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일리오데스라고 알려진 어느 우단벌레는 석탄기인 36000만 년 전에 육상에 정착했다. 그 이후로 우단벌레는 이 행성의 정글 속에서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살아왔다.

할루키게니아의 복원도(나무위키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