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시대 정치사상의 스펙터럼 : 정치 사회
“‘정치 사회’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살펴보자. ‘정치적’이란 말은 사회질서 전체를 창출하는 과정 혹은 절차를 지칭한다. 이러한 의미의 ‘정치적인 것’이란 ‘전-정치적인 것’을 전제한다. 즉, 공동체가 평화로이 공존하기 어려운 문제 상황을 일단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를 당연시하지 않고 의식적인 노력으로 공동생활의 양식을 창출해 내겠다는 정치적 행위자들이 전제된다. 다시 말해 정치 사회의 창출은 관습을 당연시하는 관습 공동체의 구성원과는 다른 부류의 정치적 행위자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의미의 정치 사회 개념은 특히 전국시대 제자백가 사상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159~160쪽)
“전국시대 정치사상의 전반적인 면모를 음미하기 위한 두 가지 관점을 채택해야 한다. 첫째, 사상가들이 예치 사상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이 시기 정치사상이 영토에 기반한 준근대국가의 출현을 준비했는지 여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162~163쪽)
전국시대 사상가 | 정치사상가의 사상 내용 |
묵자 | -예의 수행이 진정한 도덕적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의 반복적 수행이 특정 행위의 반복적 산출을 넘어 어떤 감수성 혹은 기질(인)을 창출하기도 한다는 공자의 입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묵자는 자연상태를 갈등하고 상호 배제적인 관점들이 모여 서로 경쟁하는 상태이고 이는 결국 통합의 원리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본다. 그러면서 통합의 원리를 겸애(兼愛)로 제시한다. 겸애사상에 따르면 통치자는 물질적 재화를 공평하게 분배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군주 중심의 정치 시스템을 옹호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의사 결정 과정에서 아랫 사람을 배제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동기로 겸애라는 묵자적 규범을 실천할 수 있을까? 겸애의 시스템에서 얻는 이익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지도자를 따르게 된다고 생각했다. -묵자의 비전이 이전의 비전에 비해 훨씬 더 통치자 중심적이며 위계적이긴 해도 국가와 관련해서 유의미한 제도의 변화를 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군주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기제인 국가의 힘 자체를 증진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
순자 | -순자는 전-정치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 그리하여 누구도 자신들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는 상태로 상상하였다. 그 갈등의 원천은 묵자가 주장한 것처럼 원칙들의 충돌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사람들 간의 경쟁이다. 욕망을 좀 더 충족하기 위해 인간들은 예제(禮制)를 만들어서 ‘자연 상태’를 떠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순자는 정치 사회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욕망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욕망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성악설은 오도할 가능성이 있는 표현이다) -인간에게는 자라나는 욕망에 제동을 걸 만한 타고난 본질적 기제가 없다. 따라서 인간 행위를 규제할 외적인 규범과 그 규범을 실천할 수단을 창조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다. 순자는 욕망의 조율된 충족을 옹호한 것이다. 욕망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야만적인 삶을 벗어나 지속 가능한 공동체 속에서 삶을 영위하려면 예를 창조할 수 있는 성왕이 필요하다. 일단 예가 창조되고 나면, 개별 인간은 예를 참조하여 자기 수양을 해나갈 수 있다. 그 예에는 사회 분업도 포함된다. -순자는 통치하는 데 군주 중심주의를 한껏 발전시킨 나머지 군주의 참모 노릇을 할 지식인의 자율성마저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순자의 비전 속에서는 국가의 기능 역시 증대한다. 순자는 “전복적인 이데올로기를 끝장내는 국가를 상상하였기 때문이다” |
노자 | -농업에 기반한 단순한 이상향을 상상한다. 노자가 말하는 자연 상태란 문명의 정반대 상태이다. 그 속에서는 예와 법의 제약을 (크게) 받지 않았을 것이다. 노자는 예를 통해 이루어지는 관습 공동체는 자연스럽다는 전통적인 주장을 폐기한다. 노자에게 예란 타락해가는 인공적인 질서를 나타낼 뿐이다. -통치자는 간섭하지 않는다. 그저 사태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어서 개개인과 가족들이 평화롭고 자족적인 삶을 누리게끔 한다. 이 자유방임 스타일의 통치는 무위(無爲)라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이 자유방임적 통치 뒤에는 문명화 과정을 되돌리려는 목적이 숨어 있다. 무관심한 척하면서도 정치적인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자식 통치자는 대단히 정치적인 존재다. 노자의 대안은 인공적인 정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공화주의적 혹은 국가주의적 이상과는 정반대로 최대치로 각성하고, 강경하게 의견을 표출하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바람직한 정치 공동체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치적 무관심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사회를 이상적인 상태로 돌이키는 책무가 통치자의 어깨에 온전히 떨어진다는 점에서 노자의 비전은 통치자 중심의 비전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 통치자의 주된 수단이 무위라는 점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는 없다. 샤오궁취안은 도가에 세상을 유기하는 염세 사상이 있다고 말한 바 있지만, 이러한 정치사상을 염세사상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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