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중국정치사상사, 김영민 저, 사회평론아카데미 간행 5.

무주이장 2023. 2. 26. 15:49

전국 시대 정치사상의 스펙터럼 : 정치 사회

 

전국시대 정치사상의 전반적인 면모를 음미하기 위한 두 가지 관점을 채택해야 한다. 첫째, 사상가들이 예치 사상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이 시기 정치사상이 영토에 기반한 준근대국가의 출현을 준비했는지 여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162~163)

한비자 -한비자에 따르면 역사는 네 단계(상고(上古), 중고, 근고, 당금(當今))를 선형적으로 거쳐왔다. 상고 시기에 대한 한비자의 묘사는 자연 상태에 대한 노자의 묘사를 떠올리게 한다. 양자 모두 인간의 본래 조건은 정치적인 다스림을 요청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사람 수가 많아지고 재물이 줄어들자 사람들은 힘을 다해 노동해도 간신히 먹고산다는 상황이 될 때 정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역사의 동역학은 도덕의 쇠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공자, 맹자, 노자, 순자와 달리 한비자는 고대를 이상화하지 않는다. 그는 역사의 전개를 가치중립적인 입장에서 설명한다. 역사는 발전이나 쇠퇴가 아니라 오직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일 뿐이다. 도덕적 가치조차도 고유한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를 가질 뿐이다.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는 것은 이기적인 인간 본성이다.

-인간의 욕망을 질서 있는 방식으로 충족할 수 있으려면 통치자는 위계적인 관료제의 최상위에 위치하여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고, 상벌을 도구 삼아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비자의 비전은 서양 근대의 법치개념과는 거의 무관하다. 법은 권력 남용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람들을 통제하거나 국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정된다. 한비자의 비전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만, 중요한 예외는 통치자다.

-동시에 한비자에게 이상적인 통치자는 법이나 규칙에 구애 받지 않고 자기 의지와 변덕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폭군이 아니다. 통치자는 사회적으로 적용되는 법 안에 머물고 또 그러한 법을 집행해야만 한다. 그뿐 아니라 통치자 및 피치자 일반은 아무 법이 아니라 자연법적 성격을 띤 규율을 따라야 한다.

-한비자는 통치자의 개인 도덕에 높은 기대를 품지 않고, 완벽하게 작동하는 행정 기계를 옹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비자는 진정한 국가주의자이다.

양주 -양주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예의 그물에 연루되어 있는 존재로도, 태생적으로 도덕적인 존재로도 보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육체적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른 좋다는 것에 휘둘리지 않고 무병장수를 하기 위해서는 부와 명예를 향한 무분별한 욕망 같은 것은 제어되어야 마땅하다.

-느슨한 인간 연합을 옹호한 양주의 비전은 강한 군주국 비전에 대한 반론이었다고 볼 수 있다. , 한비자의 비전과 상극을 이루는 비전인 셈이다. 아무리 맹자가 양주를 격렬하게 비판했다고 해도, 한비자와 대척점에 있다는 점에서는 양주와 맹자는 한편에 가깝다.
 
맹자 -맹자 인성론의 핵심은 개인 도덕의 완성이다. 이 점은 바로 인간 본성이 선한데도 불구하고 왜 세계에 좋은 사회정치적 질서가 없는지를 설명해준다. 맹자는 인간이 원래 공격적이고 반사회적인 성질을 타고났다고 보지 않았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공동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쟁하는 개개인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현실적 협정이나 갈등하는 이해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포괄적인 체계 같은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타고난 도덕의 싹을 잘 배양할 수 있는 건강한 환경이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정치 사회란 외부에서 법을 부과하는 이가 만들어낸 구속이라기보다는 인간 본성에서 유래하는 선물에 가깝다.

-인간 본성이 근본적으로 선하고, 공감력있고, 합리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맹자의 농경의 비유로 설명한다. 식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도 점진적으로 성장한다.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환경이 필요하다. 인간이 저지르는 악은 바로 그 성장이 실패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치적 위계와 도덕적 위계가 공존함에도 불구하고, 통치자가 도덕적으로 우월한 지식인의 말에 경청하리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는가? 맹자는 도덕을 강조하기 위해 쾌락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쾌락을 포함할 수 있게끔 쾌락을 재정의했다.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쾌락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 수양을 통해 자신의 쾌락을 적절히 형성해나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도덕적 통치는 통치자와 피치자의 이해관계에 모두 들어맞는다.

-맹자는 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에 반대하였다. 통치자는 전쟁하는 대신 백성들의 민생을 보호하고 도덕성을 진작해야 한다. 통치자는 세금을 조금 걷음으로써 백성들 스스로 사용할 재원을 남겨두어야 한다. 이것이 꼭 맹자가 극단적인 최소 국가를 지향하였다는 말은 아니다.

-맹자가 개인 도덕이 정치의 핵심이라고 간주했던 것은, 정치적 위계의 최정점을 차지하는 군주가 발휘하는 영향력 때문이다. 바로 그 지위와 영향력 때문에 군주의 개인 도덕은 전 세계의 정치적 안녕의 관건이 된다고 맹자는 생각하였다.  
 
장자 -장자의 텍스트는 사회적 관습, 규범, 가치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 기존의 관습과 정치 이론은 가능한 것, 그리고 상상 가능한 것들에 대해 제한을 가한다. 이를테면 다른 사상가들은 정치 이론을 만들면서 인간 본성에 대해 확언하곤 하는데, 사실 그 인간 본성론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편협한 확증편향을 반영할 뿐이다.

-장자식 사고에 대한 분명한 반론 중 하나는, 정치 비평이 실제 비평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참여적 정치 행위자의 역할보다는 초연한 관객의 역할을 하기 십상이다. 이와 관련된 또 하나의 문제는, 장자는 X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고 X가 무엇이 아닌지에 대해서만 말한다는 점이다. 정치 영역에서 대안적인 비전이 무엇인지 장자는 확고하게 말하지 않는다. 목전의 현실보다 더 큰 어떤 총체가 존재하고 그것을 염두에 줄 필요가 있다는 막연한 관념만 남는다.

-장자 사상은 치료적일지언정 대안적인 정치체를 위한 건설적인 비전 혹은 정치적 행동을 위한 청사진을 제공하지 않는다. 전국시대에는 사상가와 정치가들은 효율적이고, 집단적이고, 조직화되고, 책임 있는 정체성, 행동, 제도를 통해 질서를 향한 그 강한 열망을 만족시켜야만 했다. 바로 한비자의 정치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진 진나라가 그러한 열망을 일단 잘 만족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후대에 사는 우리는 결국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음을 알고 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