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창비 간행 2.

무주이장 2023. 1. 9. 13:53

아버지와 딸의 화해는 항상 죽음이 전제되어야 할까?

 

 젊은 시절, 빨치산으로 참전하고 그 대가로 20년 남짓의 수감생활로 가족과 격리되었던 아버지를 딸은 잃어버립니다. 다정했던 아버지가 사라짐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부재는 딸에게 상처였지만 아버지가 풀려난 후에는 존재만으로 딸과 주위 친인척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이런 아버지가 헥명을 말하면 딸은 그런 아버지가 비현실적이고 마치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 냉소를 보냅니다. 시대가 만든 굴레를 메고 쳇바퀴 돌 듯 살았던 힘없고 남들에게 폐만 끼친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인식한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자 딸은 상주가 되어 아버지의 장례를 치릅니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하여 생전 아버지의 모습과 다른 아버지가 자기 모르게 살았다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평소에도 그냥 구례에서 동네에서 있었던 아버지이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미화된 아버지의 모습은 아닙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딸은 부끄럼을 느끼게 되지요. 쉽게 찾아온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소설이 끝나갈 때까지 딸은 무능력한 아버지를 냉소합니다.

 

아버지는 일삼아 (새농민)을 탐독했고 (새농민)의 정보에 따라 파종을 하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농사를 문자농사라 일축했다 ~ 문자에 대한 확신으로 아버지는 (공산당 선언)을 읽었고 사회주의자가 되었을 테다. ~ 아버지의 농사는 번번이 망했고, 그해 겨울에도 내 부모는 망한 농사의 후유증으로 남은 벌레 먹은 밤을 일삼아 까는 것으로 기나긴 겨울을 견디는 중이었다.’(8~9)

 

이기려고 작정하고 이긴다고 확신하고 아버지는 빨치산 활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다락에 숨은 순겡을 살려주었더니 경찰을 그만두고 빨치산에 합류하려는 사람에게 아버지가 만류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질 게 뻔한 전쟁이었소. 우리야 기왕지사 나선 몸이제만 그짝은 사상도 읎고 신념도 읎는디 멀라고 뻔히 질 싸움에 끼일 것이요.” (179)

 

세상 살아내는 일에 요령도 부득인 것 같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딸은 압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인지 아니면 진작 알았지만 아버지를 안다고 하지 못한 것인지 그것은 모를 일이지만 아버지가 살아낸 세월을 그냥 무능이라는 말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것을. 딸은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나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나이 들수록 잘 산 것 같지가 않다. 나는 오만했고 이기적이었으며 그래서 당연히 실수투성이였다. 신이 나를 젊은 날로 돌려보내준다 해도 나는 거부하겠다. 오만했던 청춘의 부끄러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므로.” (266)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