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설명이 우리 사례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제가 어릴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일본에 10년이 뒤졌고, 미국에는 20년 뒤떨어졌다는 말입니다.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열망하며 그들을 부러워했지만, 그 간격이 너무나 멀어서 부러움 반, 열등감 반으로 했던 말이라 짐작합니다. 아만다 리플리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미국 사회가 반목이 심해 갈등이 고착화되고 고도화되었다는 염려일 것입니다. 저자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 후 “미국인은 수많은 정치적 사안에 합의를 이뤄냈으면서도 정치 성향에 따라 상대 진영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라며 “이 선거 결과를 놓고 친구나 가족과 아예 대화가 단절된 미국인이 무려 3,800만 명, 즉 전체의 10%에 이른다는 추산치가 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서로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갈등을 저자는 ‘고도 갈등(극한 갈등)’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미국보다 20년이 늦다면, 우리가 고도 갈등을 느끼는 시점은 2036년쯤 되어야 함에도 2022년 우리 사회의 갈등은 미국에 버금가거나 어쩌면 더욱 심각할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5년 동안 취재하고 살펴본 사례를 들어 고도 갈등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해소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사례를 들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한 가지의 사례를 가지고 저자의 설명을 정리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서평이어야 하는 글이 조금 방향을 잃을 수도 있고 용두사미가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글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과거 사례에서 배우는 교훈도 진영에 따라 달랐다.
2022년 10월 29일 핼로윈 축제일, 이태원에서 있었던 압사 사고로 인하여 158명이 죽었습니다. 희생자의 대다수는 젊은이들이어서 더욱 가슴이 아픈 참사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고는 아직도 해결의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정부와 여당, 그리고 소위 보수 유튜브가 한편이 되고, 야당과 유족대표가 상대방이 되어 갈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왜 갈등이 일어날까요? 우리는 이 사고와 비슷한 사고의 경험이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세월호 사고가 그것입니다. 그때도 우리 사회는 피해자를 구제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당연한 일을 갈등 속에 던졌고, 이어진 최순실 사건을 직접적인 이유로 박근혜 정권은 정상적인 정권이양을 못하고 탄핵을 당하는 결과까지 이어졌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우리 사회는 이 사고를 관리하는 방법에 서툴렀습니다. 그 후 우리가 세월호 사고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2022년 오늘 다시 10.29 참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갈등이 없지 않을까요?
우리 언론에 기대할 수 없을까요? 책에는 불가능하다고 쓰였습니다.
‘2021년에 발표된 에델만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인은 언론과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뢰 수준이 낮은 사회일수록(가정이든, 학교든, 국가든) 갈등 수준은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7쪽)
언론이 갈등을 해소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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