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다.
원근법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알베르티는 “그림은 세계로 열린 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르네상스 이전에도 그림은 여전히 세계로 열린 창이긴 했습니다. 다만 르네상스 이전의 창에는 유리에 먼지가 많이 끼어 있어 불투명했습니다.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나서야 먼지가 닦여 맑은 창이 되었지요. 이와 비슷한 비유를 19세기 역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도 합니다. 르네상스 이전까지 사람들은 베일에 싸인 세상만 보다가 이제 그 베일을 걷어내고 세상을 온전히 보게 되었다고요. 양 교수의 설명은 이어집니다.
피렌체 사람들이 투명한 시각으로 새롭게 발견한 세계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여기서도 마사초의 작품이 좋은 예가 됩니다. 마사초는 성 삼위일체를 그리기 직전에 브란카치 예배당 벽화를 그리는 일을 맡았습니다. 많은 그림들 중 마사초가 그린 ‘성전세’라는 그림이 가장 중요합니다.
‘세금과 관련된 주제를 그리게 된 데에는 당시 사회 분위기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거예요. 그림이 그려지던 시기에 피렌체 정부는 공명정대한 세금 납부를 독려하면서 세금 조사를 엄격하게 실시하고 있었어요. 이 그림을 그리도록 주문한 브란카치 가문은 은행업을 생업으로 삼은 집안이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세금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럼 세금은 어디에 쓰였을까요?
브루니는 ‘피렌체 찬가’에서 피렌체 사람 중 부자는 자신의 부에 의해 보호를 받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정부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고 썼습니다. ‘부자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지만 사회적 약자들은 그런 힘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그 약자들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의미죠. 브루니는 이런 정부의 보호 시스템 덕분에 피렌체가 강한 국가가 되었다고 자랑합니다. 브루니가 자랑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부의 보호 시스템을 브란카치 예배당 벽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에서 베드로는 빈민들에게 구호물품을 나눠주는 중입니다. 아이를 안은 여인과 지팡이를 짚은 거지로 보이는 남성이 물품을 받고 있어요. 베드로의 발아래에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죽어 있습니다. 약속한 봉헌금을 속인 죄로 죽음을 당한 겁니다.’
‘그림 속 베드로를 피렌체 정부라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아주 명쾌하게 해석됩니다. 정부는 세금을 잘못 신고한 이를 강하게 징벌하고,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은 시민들에게 골고루 쓰인다는 메시지를 담은 거지요.’
피렌체 정부가 어떻게 정책을 폈으면 누구나 싫어하는 세금에 대하여 선의를 갖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보수적인 정부가 집권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부자감세’를 주장합니다. 경제용어로 ‘낙수 효과’를 강조하면서 세금을 깎는데, 최근 통계를 보면 이제 낙수 효과는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빈부 격차만 더 커지면서 사회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옳은 것으로 현실 상황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족을 하나 달면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대머리를 비하하는 경우에 맞서기 위하여 머리카락 숱이 적은 분들이 습관적으로 하던 주장입니다. “대머리는 유전적으로 우성 인자다. 대머리 독수리를 보라. 새들의 왕이다. 거지 중에 대머리를 본 적이 있느냐? 없다.”라고 농담처럼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장이 틀렸습니다. 마사초의 그림 ‘구호품의 분배와 아나니아의 죽음’ 그림 속에 지팡이를 짚고 구호품을 받는 사람이 ‘거지’로 추정된다고 양 교수는 설명합니다. 거지 중에는 대머리도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도 대머리입니다. 조롱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단순하게 되면 억지 주장이 판을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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