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인식하는 독립된 주체의 등장. 원근법에 그런 의미가…
양정무 교수의 미술이야기 5편은 르네상스 초기의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앞서 읽은 미술이야기 6편은 이탈리아에서 발생하고 성장한 르네상스 미술이 어떻게 알프스 산맥을 넘어 북유럽에까지 가서 발전했는지를 설명했지요. 북유럽의 사실주의 르네상스 미술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과 융합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5편의 부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입니다.
200여 개에 달하는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서로 경쟁하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미술이 꽃을 피웠는가를 시작으로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국가를 소개하며 이탈리아의 미술을 설명합니다. 책을 읽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지금은 미술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근법이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1425년,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피렌체 사람들 눈앞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피렌체 대성당의 돔이 한창 지어지는 중이어서 피렌체 어디에서든 웅장한 돔 공사현장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또 하나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그려지고 있었던 놀라운 그림 한 점 앞에서였습니다. 그림 한 점이 피렌체 대성당의 돔 건설과 동등한 중요한 사건이라니요. 이 그림은 마사초라는 작가가 그린 성 삼위일체라는 큰 벽화입니다. 성 삼위일체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그림 중 하나로 손꼽을 만합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을 원근법이 적용된 최초의 본격적인 그림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그림을 복사해서 가져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마사초의 이 그림 덕분에 미술에서 원근법이 실현 가능한 기법이 되었다고 합니다.
원근법을 발명한 건 브루넬레스키(피렌체 대성당의 돔 시공법 개발자입니다)였고 마사초는 바로 브루넬레스키에게 직접 원근법 원리를 배웠을 거라고 합니다. 사실 마사초가 사용한 원근법, 그중에서도 소실점을 통해 입체적인 공간을 구성해내는 원리는 브루넬레스키가 고대 로마 건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물론 원근법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있던 기법이었고 브루넬레스키가 다시 발견한 것뿐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브루넬레스키의 업적이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브루넬레스키가 마사초에게 원근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건 확실하니까요. 원근법을 배운 마사초가 너무나 잘 표현해내서 브루넬레스키도 어린 마사초의 재능을 높이 샀다고 합니다.
이 원근법을 이론으로 정리해낸 사람이 ‘르네상스 맨’의 원조격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입니다. 그는 1435년 ‘회화론’을 집필했는데 여기서 원근법을 그리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피렌체에서 시작된 원근법은 대세가 되고 이후 피렌체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그림에 원근법이 적용됩니다. 그리고 원근법은 곧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국가들로 빠르게 퍼져 나가죠.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만물의 기준이 되는 인간, 세계의 중심에 선 인간에 대해 자각했다고 설명하는데, 그 점을 원근법을 통해 양 교수는 설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원근법에서 소실점은 하나뿐입니다. 원근법은 단 하나의 시선만을 인정합니다. 소실점도 하나, 개인도 하나지요. 따라서 원근법은 개인의 탄생을 전제로 합니다. 즉 원근법은 단순히 그리는 방식을 넘어서 세계를 인식하는 독립된 주체의 등장을 보여주는 거예요.”(343쪽) 원근법이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기법이라는 말입니다. 원근법에서 읽어 낸 의미, 정말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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