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무대인 메모리얼 병원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요.
먼저 얘기했듯이 허리케인이 상륙해서 지하실이 침수될 우려가 있자 병원 시설 관리자와 다른 병원 직원들이 함께 침수를 막고 지하 창고에 있던 식수와 음식을 빼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한 결과 지하 창고에는 아직도 많은 물과 음식이 있었습니다. 병원에 갇힌 시간 동안 환자와 병원 관계자 그리고 대피한 주민들은 물과 음식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허리케인 이후 붕괴된 제방으로 인하여 도시 전체와 병원이 침수되기 이전에 창고에 보관 중이던 물과 음식을 옮기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시간은 충분한데도 말입니다.
어렵게 해양경찰헬기가 구조를 시작하여 야간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의 높은 피로도와 사고의 위험을 감안하여 병원의 책임자들은 헬기를 이용한 야간 구조 작업을 중단하고 낮에 계속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해양경찰의 헬기들은 여전히 급한 상황이어서 다른 구조 현장으로 가서는 다시 오지 않게 됩니다. 이런 결정을 한 병원 책임자들은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요? 밤새 계속 구조를 해야 한다는 직원의 의견은 무시되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침수되어 요구조자가 부지기수이고 장비와 인력도 부족한 상황임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던 병원 책임자들이 왜 그런 오판을 했을까요?
병원 안의 상황을 설명하는 에피소드가 2개 눈에 들어옵니다. 하나는 병원에 근무 중인 간호사 한 명이 병원 근처에서 강간을 당했다는 소문이 떠돈 경우입니다. 혼란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가짜 뉴스였습니다. 병원 책임자가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최종적으로 경비 부서에 확인하고는 가짜 뉴스임을 알리고 소요를 가라앉힙니다. 둘째는 구조할 배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배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리며 짐은 가방 하나 만을 가지고 1층으로 내려가라고 사람들을 유도합니다. 모두가 간절히 기다리던 구조 소식이라 앞뒤 가리지 않고 1층으로 내려갔지만 배는 오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배를 기다리는 그 순간 병원 직원들과 대피한 주민들의 짐이 도둑을 당합니다. 병원 안의 상황을 알리는 에피소드로서 극단적인 불안감에 잡히기 이전에도 병원 안의 사람들의 심리 상황을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병원 안에는 사람들 외에도 반려 동물들이 같이 대피를 하였습니다. 물과 음식이 떨어진 상황에서 반려 동물들의 보호가 어려운 상황이 되자 병원에서는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됩니다. 반려 동물을 안락사시키게 되는 것이지요. 케이지 속에서 죽은 반려 동물들의 사체를 보면서 피곤에 찌든 의사가 점점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화면 속에는 죽어가는 듯한 의사와 죽은 반려 동물들로 한가득입니다.
중환자들이 한 명씩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지 죽이는 직업이 아닙니다. 의사들이라고 해서 환자의 사망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환자가 죽을 때, 그것도 약과 그들을 치료한 기기를 운용할 전기만 있으면 죽지 않았을 환자가 죽을 때, 의사는 같이 절망합니다. 자신의 무기력함에 현실을 견딜 힘을 잃기도 합니다.
전기가 끊기고 생명 유지 장치가 작동을 멈추고, 에어컨이 꺼지자 병원 안 실내 온도는 40도를 넘는 지옥으로 변합니다. 더 이상 병원은 병원이 아닙니다. 그저 환자들이 머무는 집일 뿐입니다. 그 집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화장실을 사용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물도 사용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병원 안은 오물이 가득 차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악취가 진동합니다. 냄새의 밀도는 사람이 이동하기에도 벅찰 정도입니다. 사람들의 심신은 점점 허물어져 이동하지 못하고 한 곳에서 꼼짝하지 않고 정지합니다. 환자들은 자꾸 죽어 갑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마음도 죽어 갑니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가 어렵습니다. 어디선가 구조하겠다는 말만 들으면 벌떡 일어나겠지만 소식은 종내 무소식입니다.
언 발에 오줌 누기와도 같은 구조 작업이 갑자기 활기를 띕니다. 경찰 당국이 구조를 하러 왔습니다. 하지만 조건부 구조였습니다. 병원을 오후 5시 해지기 전까지 모두 비우라는 명령과 함께 시작된 구조는 피할 수 없는 악마의 약속같이 왔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외쳤지만 경찰 당국의 명령은 침수된 병원 안에서는 서릿발 같이 차갑습니다. 40도를 넘는 실내 온도지만 경찰의 명령은 조금도 녹지 않고 여기저기 병원 구석구석 쓰러져 있는 병원 직원들과 환자를 찔렀습니다. 대피 명령은 그 순간에도 환자를 죽이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병원 책임자에게 죽어가는 환자의 고통을 줄여줘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책임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묻지 못합니다. 의사는 반려 동물을 안락사시킨 의사와 의논을 하고는 두 명의 간호사와 함께 약물이 든 주사기를 들고는 환자를 찾아다닙니다. 병원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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