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사랑의 생애, 이승우 장편소설, 위즈덤하우스

무주이장 2022. 9. 7. 11:13

사랑의 생애, 이승우 장편소설, 위즈덤하우스

 

제목이 사랑의 생애가 된 이유.

 사랑은 사람에게 기생한다. 기생하는 생물은 숙주를 조종한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숙주로 삼는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생할 수 없다.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을 시작한다. 기생한 사랑은 성장하고, 성장과 함께 변하면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인다. 숙주가 감당할 수 있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도저히 감당이 안 될 듯한 감정의 변화와 그로 인한 돌발적인 태도를 기생하는 사랑이 강제할 수 있다. 사랑을 하는 숙주는 주체일까 객체일까? 연가시는 곤충의 몸에서 성장을 한다. 성장을 마치면 곤충의 몸 밖으로 나와야 한다. 연가시는 물 밖에서 생존이 불가능하므로 반드시 물로 돌아가야 한다. 연가시는 숙주를 물로 유인한다. 신경을 자극하여 숙주를 물로 뛰어들게 만든다. 숙주는 어쩔 수가 없다. 숙주보다 더 긴 연가시의 몸이 빠진 숙주는 빈사 상태에 빠지고, 거의 죽고 만다. 사랑이 빠져나간 사람의 활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때로는 실연으로 죽기도 하고, 실연으로 두 번 다시 숙주가 되지 않기 위해 사랑을 회피하고 사랑으로부터 도피하기도 한다. 때로 숙주는 기생체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기생체인 사랑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작가가 만든 길을 따라 가보기로 하자.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랑이 만드는 이야기라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사랑은 사건이다.

 거의 온종일 한 사람만을 생각하는 것은 사건이다. 큰 사건이다. 사랑에 걸려든 것이다. 자기 가슴속에 그녀가 가득 차서 거의 자기 자신이 그녀로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그렇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거처를 제공했다는 뜻이다. 그가 살도록 허락했다는 말이 아니다. 사건은 계약이 아니다. 허락이나 동의가 필요한 영역이 아니다. 마치 잠을 자는 동안 꿈을 꾸는 것과 같다. 우리는 꿈을 꿀 수 없다. 꿈은 꾸어진다. 수동태다. 꿈은 잠자는 사람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허락을 구하지 않고 허락을 할 수도 없다. 우리가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꿈이 꾸어지는 것을 겪을 뿐이다. 사랑은 덮친다. 덮치는 것이 사건의 속성이다. 사랑을 속수무책으로 겪어야 한다.

 

사랑하려면 자격이 필요한가?

 자격을 갖추어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에 제한을 두어 특별하고 고귀한 자리에 올려놓음과 동시에 실제 삶과는 관련 없는 허구적인 것으로 밀쳐놓는 역할을 한다. 그 반대도 있다. 사랑이 획득하거나 잃을 수 있는 라이선스의 영역으로 떨어질 때, 그러니까 운전면허증이나 워드프로세스 자격증과 진배없는 것이 될 때 사랑이 별거냐?’는 오만한 선언이 된다. 그래서 사건으로 덮치는 사랑을 자격이 없다고 회피할 때는 겸손한 말처럼 보이지만 오만한 태도다. 반대로 너무나 사랑한다고 해봤자 그건 별 것 아닌 짓이기에, 사랑할 자격이 없어 헤어지자는 말이나, 너무나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말은 겸손을 가장한 오만한 태도이다. 오만을 가장한 비겁하게 사랑을 회피하는 말이다.

 

유일하고 불변하는 사랑에 대한 논쟁

가.  자유연애주의자들의 주장

이 세상 사람은 다 다르다. 다 다른 사람은 제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다 다른데 어떻게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는가.

 

나.  연애지상주의자들의 주장

사람은 다르지 않다. 사람은 거기서 거기다. 더 특별한 사람도 없고 덜 매력적인 사람도 없다. 그래서 한 사람만 사랑해도 된다. 개인의 차이를 부각하고 강조하는 시각에 의해 불평등과 차별이 정당화된다. 이런 정당화가 가진 위험의 극단적 형태는 히틀러의 인종차별이다.

 

사랑을 위한 도피와 사랑으로부터의 도피

 사랑을 위하여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간 아버지는 버려진 아내와 아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이 절망을 대면하고 살게 한다. 사랑을 위하여 도피한 아버지는 사랑으로부터 도피하는 아내와 아들을 만든다. 실연이 준 상처와 절망은 사랑을 피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랑은 소망도 주지만, 상처와 절망도 준다. 기생하는 사랑이 숙주의 신경을 자극하면 어떤 곳이든 갈 수 있고, 어떤 상처도 줄 수 있다는 것이 치명적이다. 밥을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는 이유도 역시 사랑에 기인할 수 있다. 허기가 지면 사랑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일이다.  

 

실연에 대한 해석

사랑이 사라진 것이 자기가 부족해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는 자존심이 시킨 것. 이 시도의 성공 여부는 다른 문제이다. 대개의 경우 이런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연에 따른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지만 실연으로 인한 자기 비하는 피할 수 있을 테니까. 사랑이 빠져나간 빈자리로 인한 빈사상태는 반드시 채워져야 하는가 보다. 사랑을 사랑으로 채울 수 있으려면 빈사상태에 우선 적응해야 한다. 적응기에 적응한 것이 자존심이다.

 

저자는 이 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가의 글이 개념적이며 반복적, 반어적, 논리적으로 설명되지만, 사람의 감정에 대한 충만한 이해가 전제되었다는 느낌을 늘 받곤 한다. 세 사람 사이의 사랑이야기 소설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사유가 철학적으로 이루어진 듯한 이야기다. 읽기를 권한다. 책 읽는 중간에 과거의 사랑이, 또는 현재의 사랑이 기억의 책장에서 슬며시 나와 다시 가슴속에 기생하려 한다는 것이 즐거움일까 괴로움일까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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