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출판.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는 은근한 매력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회현상, 당연한 듯한 사회의 부조리를 배경으로 쓰인 추리소설은 화끈함 대신 은근함으로 고발합니다. 범인의 치밀함 대신 범인에게 강요된 선택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결론을 알면서도 궁금해하며 글을 재미있게 읽어갑니다. 미국의 추리소설과는 다른 맛이 있습니다. 그래서 뽑아 든 책이 ‘모방범’입니다. 3권의 분량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추리소설이니 이 여름 더위를 이기는 방법으로 나쁘지 않고, 불편하지 않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원고지 6천 매가 넘는 분량이라고 하는데, 중간중간 글이 힘이 떨어지고, 맥락의 연결이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어디가?”라고 물으면 “여기다.”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랬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잘 읽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책을 덮을 정도는 아니고요.
저는 ‘SNS 가장’인 큰딸의 도움으로 넷플릭스를 자주 봅니다. 이제는 제가 볼만한 영화나 드라마가 없을 정도로 많이 봤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시즌2를 넘어가는 것이 없습니다. 시즌1을 너무나 재미있게 봤지만 시즌2로 넘어서면 이야기의 맥락이 억지스러워서 중간에 보기를 멈춥니다. 유일하게 재미있게 본 시리즈물은 ‘러브&데스’였습니다. 이것은 단편물로서 스토리가 이어지지는 않는 것이라 힘이 떨어지지 않는 수작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보시기 바랍니다. ‘모방범’을 읽으면서 시즌2나 시즌3의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는 기시감이 있었습니다. 훌륭한 작가의 작품에 너무 박한 점수를 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제 느낌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길게 쓸 일은 아니지만, 옮긴이 양억관의 주장에 따르면 ‘등장인물의 심리를 다루는 문장들이 작가의 만만치 않은 역량을 웅변해주고 있다.’라고 하지만 이들의 심리를 설득력 있고 세련되게 설명했다고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물들의 심리가 이러면 좋겠다는 강요로 보였고, 디지털 시스템으로 돌리면 여기저기 비슷한 문장들이 쏟아져 나올 듯한 식상한 감성들이었습니다. 일본 경찰의 수사기법에 대한 설명도 두리뭉실하여 아날로그 경찰, 서류 정리만 하는 경찰로 보였습니다. 수사를 방송에 의존한다는 느낌까지도 들었습니다. 범인에게 접근해 가는 과정도 생략되어 갑툭튀 상황이 자주 보였습니다. 작가가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범인들의 어린 시절 소외가 무의식에 자리 잡아 범죄성향으로 발전하는 그래서 연쇄살인, 근친 살인이라는 몹쓸 범죄를 저지르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설명하려는 의도와 일본 사회가 이런 범죄를 예방할 능력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는 있었지만 같이 분노하고, 공감하며 이야기를 따라가지는 못했습니다. 설계가 빈약한 집을 짓느라 여기저기 우왕좌왕하며 헤맨 것처럼 글을 읽었다는 표현을 하겠습니다.
모처럼 재미없는 책, 선전 문구에 속아 산 책 같은 느낌이지만, 원고지 6천 매를 매력적인 스토리 구조와 인물 묘사, 심리 묘사, 설정 등에서 완벽하리라 기대하는 것이 불능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또 한 편 읽은 경험으로 간직하겠습니다.
'매일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짱깨주의의 탄생, 김희교 글, 보리 출판 2. (0) | 2022.08.14 |
---|---|
QT: 야고보서, 1장. (1) | 2022.08.10 |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4. (0) | 2022.08.06 |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3. (0) | 2022.08.06 |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2. (0) | 2022.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