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이해해보기.
전쟁이 터집니다. 우리가 먼저 쳐들어간 전쟁이 아니고, 적들이 침략을 하면서 시작한 전쟁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행동을 취하시겠습니까? 만약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독일과의 전쟁에 참전한 소련군 참전 여군, 타마라 스테파노브나 움냐기나, 근위대 하사, 위생사관의 증언입니다.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이힐처럼 버클이 달린 당시 최고로 유행했던 흰색 슬리퍼를 신고서 치마 입은 채 자원을 했더니, 즉시 보내주더라고. 민스크 근처에 주둔한 보병사단이었어. 그런데 나한테 돌아가라는 거야. “네가 이곳에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열일곱 살짜리 여자애가 적과 싸우겠다고 나서면 남자들이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거다. 우리가 열심히 싸워 곧 적을 물리칠 테니 너는 집으로 돌아가거라” 대령이 한 말이었어. 사단장을 찾아가 잔류를 희망했고 그렇게 되었어. 그 뒤 부대는 퇴각을 시작했어. 그게 전쟁 터지고 7일째 되는 날이었어.
그녀는 이후 스탈린그라드에서 참혹한 전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가 1942년이니까 우리 군이 가장 힘들고 처참할 때였어. 300여 명이었던 우리 병사들이 저녁 무렵에 보니까 10여 명만 남았던 적도 있었어. 그들이 다들 죽어나가고 전투가 마무리되자 우리는 우리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서로 입을 맞추며 울었어, 우리는 서로 가족이나 마찬가지였지. 피를 나눈 형제자매. 전쟁이 끝나고 나는 몇 년 동안 피 냄새에 시달렸어. 정말 지긋지긋하게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지. 나는 이제 빨간색이라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해. 그랬던 그녀가 최고로 행복한 날이 6월 7일이었답니다. 결혼식을 올렸으니까요.
부대에서 우리에게 축하연을 베풀어줬어. 남편과는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로 남편은 대위로 중대를 지휘했어. 한 달간 휴가를 받고 남편의 부모님에 계신 곳에 인사를 하러 갔지.
나는 전쟁영웅이었고, 더욱이 전선에서 왔다는 이유로 조롱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저녁에 다들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데 시어머님이 내 남편을 부엌으로 데려가더니 우시는 거야. ‘지금 누구랑 결혼하겠다는 거냐? 전쟁터에서 데려온 여자라니… 너는 여동생이 둘이나 되잖아. 이제 누가 네 동생들하고 결혼하겠니?’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 어땠는지 알아? 시댁에 음반을 하나 가지고 갔거든. 내가 무척 아끼는 음반이었지. 그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어. ‘당신은 가장 멋진 하이힐을 신고 다닐 권리가 있다오…’ 전선의 여자 병사를 위한 노래였지. 내가 음반을 틀자 남편의 큰 여동생이 오더니 내가 보는 앞에서 그걸 부숴버리는 거야. ‘당신들은 그 어떤 권리도 없다’면서. 남편 식구들은 전선에서 찍은 내 사진들도 모두 찢어버렸어… 그 일에 대해선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어. 정말 아무 말도 못 하겠어…
위의 증언을 들으시고 여러분들은 나라를 뺏기지 않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원입대를 하시겠습니까? 참전 후 조롱을 당하고 배척을 당할 수 있다는 개연성에 참전을 주저하시겠습니까? 전쟁이 발발하면 국가는 ‘국가동원령’이란 것을 내립니다. 일정한 연령의 남자와 특수한 기술을 가진 남성과 여성들, 그리고 전쟁터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차량 등의 자원의 징집. 징발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국가에 있는 모든 물적 인적 자원을 끌어 모읍니다. 동원되는 인적자원에 대해서는 국가가 충분한 보상을 하겠다는 의지를 평소에도 피력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보훈처가 있어 국가유공자, 전사자들에 대하여 예우를 하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은 예우를 다해 국립묘지에 안치하고 그들의 공을 치하하고 기립니다. 징발되는 물자는 전쟁 후 보상을 하겠다는 증서를 지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가가 총동원령을 내려도 도망가는 사람이 있으면 전쟁 중이거나, 여의치 않으면 전쟁 후 처벌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참전을 선택하여야 할 것입니다. 법과 논리대로라면 참전을 결심하고 나아가 국가가 부르기 전에 슬리퍼 바람에도 자원입대를 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6.25 전쟁을 경험한 후 돌았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전선에서 병사들이 죽으면서 “빽”하고 마지막 비명을 질렀다는 것입니다. 빠질 놈은 다 빠져나가고 빽도 돈도 없는 놈들만 전선에 몰려서 이렇게 죽어나간다는 것을 풍자한 말입니다. 아무리 농담이라고 하지만 썸뜩하지 않습니까. 타마라 스테파노브나 움냐기나의 결혼이 부대에서는 성대한 축하를 받았지만 정작 시댁에서는 저주를 받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같이 전쟁을 치렀던 경험의 공유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그동안의 고통을 위로받고 전쟁의 공을 치하받고 지금도 빨간색에 경기를 일으키는 것에 공감받을 수 없었을까요? 그냥 단지 사람이 달라서일까요?
1.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다.
2. 인간은 이기적인 욕망의 동물이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매일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4 (0) | 2022.06.14 |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3 (0) | 2022.06.14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옮김. 문학동네 (0) | 2022.06.11 |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7권 르네상스의 완성과 종교개혁) 양정무 저, 사회평론 간행 3 (0) | 2022.06.06 |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7권 르네상스의 완성과 종교개혁) 양정무 저, 사회평론 간행 2 (0) | 2022.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