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3

무주이장 2022. 6. 14. 13:37

사랑- 그 아픔에 대하여

 

어떤 점쟁이가 가르쳐줬어. ‘모두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검은 스카프를 쓰고 큰 거울 앞에 앉아 있어라. 그러면 남편이 어디에선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절대 남편을 만져서는 안 된다. 옷자락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냥 이야기만 해라…’ 나는 밤새 거울 앞에 앉아 있었어거의 날이 새려는데 남편이 왔지남편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눈물만 흘렸어. 그렇게 세 번을 나타났어. 내가 부르면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그리고 또 눈물만 뚝뚝 흘리고. 그래서 그만 불렀어. 남편이 가엾어서…”

 

 어떤 이야기인 것 같습니까? 미래의 남편이 궁금해서 밝은 보름달 뜬 밤에 양동이에 맑은 물을 받고는 입에 식칼을 물고 양동이 속을 보면 미래의 남편이 보인다는 얘기는 들어 보신 적이 있는가요? 저는 어릴 때 미래의 배우자가 궁금하면 이 방법을 쓰면 알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해 본 적은 없습니다.

 

 민스크 주 볼로진의 라트인치 마을. 엘레나 아다모브나 벨리치코, 유스티나 루키야노브나 그리고로비치, 마리야 포도로브나 마주로의 이름부터 받아 적고 저자는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울음바다가 되는 바람에 누가 누군지 알지 못하고 기록만 한 것이 위의 이야기입니다. 독일놈들을 피해 숲으로 피난했다가, 돌아오니 마을은 다 불타고 남은 것이 없었답니다. 전쟁이 끝나자 콜호스로 갔고, 거기서 중노동을 하고도 얻은 것은 오로지 씨감자 뿐이었다고 합니다. 남편 없이 혼자서 황소도 되고 암소도 되고 동분서주하며 아이들을 길렀답니다. 완전히 알거지인 신세라 떡갈나무 열매를 주워 먹고, 봄에는 풀을 뜯어먹으면서 아이들을 돌봤답니다. 그런 그녀가 남편이 너무 그립던 차, 꿈속에 남편이 찾아오자 아침 일찍 달걀 열 개를 가지고 집시 여자를 찾아갔던 거지요. ‘부질없이 기다리지 마. 그 꿈은 당신 남편의 영혼이 집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뿐이니까그렇게 사랑했던 남편을 불렀던 것이지요. 그렇게 불러놓고는 눈물만 흘리는 남편이 가여워 그만 불렀다는 얘기입니다. 정말 사랑했던 남편을 보내는 아내의 아픔이 절절이 느껴집니다.

 

 기차를 탔습니다. 제법 번잡한 기차 안에서 동생을 만났습니다. 얘기 한 마디 건네려고 동생을 찾았더니 잘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기차가 수원 역에서 정차해서는 차량을 몇 칸 떼낸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저는 더 가야 하니까 기차 안에서 기다리는데, 저기 밖에 기찻길에 동생이 혼자 있었습니다. 이름을 불렀지요. 크게 불렀지요. 그런데 동생은 그저 웃으며 아무 말 없이 손만 흔들었습니다. 그렇게 사고로 세상을 버린 제 동생과 꿈속에서 재회하고 다시 이별한 꿈이었습니다. 그리운 사람은 찾으면 오는가 봅니다. 한바탕 눈물을 쏟으며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깨고 나서도 한참을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전쟁터로 가면서 서럽게 울었다고 합니다. 어린 자식들을 차마 두고 갈수 없어 가슴이 찢어졌다고 합니다. 그 남편이 거울 속에서 나타나 자신이 하지 못한 사랑이 너무 아쉬워 말 없이 눈물만 흘렸는가 봅니다. 그렇게 원하지 않게 세상과 이별한 사람들이 부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동생이 남긴 아이는 이제 어엿한 생활인이자 직장인으로 잘 살아냅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예스24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