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출판사는 엘리.
나는 홈리스가 아닙니다. 하우스리스입니다.
400쪽이 넘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내가 선입견을 가졌음을 알았습니다.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라는 말이 새로운 세상에 적응한 창조적 인간형을 말하고, 이말에는 긍정적 의미가 가득 차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겁니다. 작가가 인터뷰를 하고 관찰을 하는 내용들이 가득한 268쪽까지 읽는 동안에 작가가 어떤 의도로 글을 쓰고 있는가를 이해 못 한 채 읽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 이 책을 소개한 지면을 의심하고 있었지요. 그런 생각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작가의 글을 통해 이윽고 확인했습니다. 나의 독해력이 완전히 엉터리는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습니다.
“내가 찾아낸 대부분의 자료들은 워캠핑을, 미국인들이 집값 때문에 전통적인 주거지 밖으로 밀려나 최저임금을 벌려고 분투하는 시대의 생존 전략이라기보다는, 쾌활한 생활방식처럼, 혹은 심지어 기발한 취미처럼 느껴지게 했다.”(269쪽)
“다른 이야기들은 그만큼 쾌활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열린 길 위에서의 스릴과 동료애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을 급진적으로 다시 상상하도록 몰아간 문제들은 회피했다.”(270쪽)
“다시 말해, 내가 몇 달째 인터뷰하고 있던 노마드들은 무력한 희생자들도, 걱정 없는 모험가들도 아니었다. 진실은 훨씬 더 미묘했다.”(272쪽)
미국의 노마드들이 어떻게 차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 원인을 앎에도,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는지 헷갈리는 상태는 곧 해결이 됩니다. 작가는 헤일런이라고 이름 지은 자기의 차를 구입하고부터 진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글을 따라가는 속도도 빨라집니다. 그들의 속내도 분명하고 정확하게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그제야 인터뷰가 가슴을 때립니다.
“그 차를 사지 않았으면 홈리스가 되었을 거예요.” 노마드 대부분은 그 꼬리표를 마치 전염병인 것처럼 피한다. 그들은 어쨌거나 ‘하우스리스’다. ‘홈리스’는 다른 사람들이다. 사미르와 라빈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법률적 관점에서 보면 자신들이 홈리스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들 그 단어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 수 있을까? ‘홈리스’라는 용어는 문자 그대로의 정의를 넘어 전이되면서 끔찍한 위협으로 변해버렸다. 그 말은 이렇게 속삭인다. 추방된 사람들. 낙오자들. 타자들. 빈털터리가 된 사람들. “우리 사회의 불가촉천민들.”(326-329쪽)
작가는 노마드들에게 장기적인 계획을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대답을 정리해봅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이 일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것 같아요.”
“사막에서 죽은 채 발견될 테니 찾아줘요. 내 몸 위에 돌 몇 개 올려주고, 그런 다음에 날 보내주면 돼요.”
“저의 장기적인 보건 의료 계획은 사막에 묻힌 해골이 돼서 태양빛에 바래는 거예요.”
경제적 실패와 그로 인한 가난은 국가의 잘못도, 사회의 부조리도, 엉터리 시스템도 아니라 오로지 자기의 책임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 홈리스라 불리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 빠진 이를 치료하지 못한 것을 가난의 상징으로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은 길 위에서의 스릴을 얘기하고 동료애를 강조하지만 결국은 정착할 수 있는 땅과 집의 욕망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자기들의 삶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은 자산보다 오래 사는 것을 걱정하는 노년의 버거운 삶 옆에 이제는 젊은 노마드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책은 8장 헤일런으로 시작하여 첫 장부터의 이야기들을 반추하게 했습니다.
제가 자주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미국은 20년을 앞서고, 일본은 10년을 앞선다” 어린 시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메리카를 동경하고, 일본인의 질서 정연함을 본받자고 가르치면서 “우리 엽전들은 어쩔 수가 없어.” 좌절하던 우리의 부모 세대 선배 세대들의 말입니다. 미국에서 노마드들이 늘어난 이유는 2007년에서 2009년에 걸쳐 미국에서 일어났고 결국 ‘대침체’로 불리는 전 세계적 경제 위기를 몰고 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문입니다. 이 사태로 미국에서만 5조 달러 가량의 연금, 퇴직금, 저축이 증발했고, 2008년 기준으로 미국 내 주택 중 압류된 주택의 비율은 87퍼센트에 달했습니다. 사태가 진정되었을 무렵에는 미국인 약 800만 명이 일자리를, 600만 명이 집을 잃은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노마드랜드’에 등장하는 노마드들 대부분은 이 시기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사실 이 재앙은 일시적인 우연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차곡차곡 쌓여 왔던 시스템의 해악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당연한 결과입니다.(414-416쪽)
저금리로 풀린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아직도 부동산은 불패라며 매일 신문쪼까리에서는 어디가 값이 올랐다느니, 언제 오를 거라느니 하면서 투기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보다 20년 뒤졌으니, 2027년에서 2029년 정도에는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전에 올 수도 있습니다. 몇 억을 쉽게 빌려 집을 샀던 사람들이 연 7퍼센트에 가까워진 금리를 현재의 수입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요? 미국에서 금리를 계속 그것도 급격하게 올려야 한다며,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하는데, 우리 정부를 구성할 인수위원들은 한국은행이 물가도 잡지만 경기 상승도 주도해야 한다며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2027년을 기다리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일본은 금년 처음으로 경상적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흑자는 2032년이면 적자로 돌아서겠지요. 아직도 미국이, 일본이 부럽다며 따라 배우라는 기성세대들이 많습니다. 이제 우리도 배울 건 배우고, 피할 건 피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교육적 여건과 자산들이 많아졌습니다. 부디 이 많은 자산들이 힘을 합쳐 미국과 일본의 뒤만 쫄쫄 따라다니며 같은 잘못을 하는 어리석음이 없기를 바랍니다. 코로나를 맞아 세계에서 한국을 따라 하게 만들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무리 언론들이 잘못돼라 주문을 외워도, 사실은 엄연합니다.
세계가 우리를 다시 보고 존경하고 부러워한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이런 모양을 처음 보고는 놀라고 감탄하고 눈물 흘리고 즐거워했습니다. 노마드랜드가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노래를 부르며 캠핑을 가고 싶습니다. 정말 캠핑을 말하는 겁니다.
작가가 인터뷰한 노마드들 중에 린다 메이는 마지막에 땅을 삽니다. 67살의 나이지만 꿈에 그리던 어스십을 짓기 위한 토지를 산 것입니다. 그녀가 즐거워하는 모습은 직접 책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 후 소식은 이 땅을 밴 생활자들의 연대인 ‘홈스 온 휠스’에 기부하고, 뉴멕시코주 타오스에 새로 땅을 사고는 온실과 작은 집을 짓고 정착할 예정이라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녀는 '사막에서 해골로 남아 빛을 바래'는 장기 계획에서 벗어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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