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구 나이 약 5000만 살이 되기까지, 대충돌-달의 형성-(2)
다른 설명이 필요했다. 우선 아폴로호를 통해 새로이 얻은 조성 관련 단서들은 다음과 같은 하나의 열쇠를 제공했다. 달은 다소간 지구를 닮았다. 달은 철이나 휘발물질은 너무 적지만, 지구와 산소 동위원소의 조성도 같고 주요 원소도 대부분 같다. 이 조성 데이터를 우리가 수천 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다음의 궤도 관련 단서들과 통합해야 했다. 달도 태양 주위의 다른 행성들과 같은 평면 안에서 같은 방향으로 지구를 돈다. 지구는 신경 쓰이게도 자전축이 23도 기울어 있다. 달의 한쪽 면은 항상 우리와 마주 본다.
천체 물리학의 규칙 중 하나는 어떤 행성도 같은 궤도를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침내 두 행성은 충돌할 것이고, 언제나 더 큰 행성이 이긴다. 지구와 테이아도 그랬다. 자주 묘사되는 컴퓨터 모의실험의 판본에서 일어나는 충돌은 확실한 측면 공격이다. 큰 몸집의 테이아가 더 큰 몸집의 지구 옆구리를 강타한다. 우주공간에서 바라보는 사건은 느린 동작으로 펼쳐진다. 접촉하는 순간, 두 세계는 처음엔 부드럽게 입맞춤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다음 사오 분에 걸쳐, 테이아는 동그랗고 말랑한 반죽 덩어리가 바닥을 때릴 때처럼 지구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고 혼자서 뭉개진다. 10분 뒤, 테이아는 꽤 많이 으스러지고, 지구는 둥근 상태에서 벗어나 변형되기 시작한다. 충돌에 들어간 지 반 시간 뒤, 테이아는 완전히 지워지고, 손상된 지구는 더 이상 대칭적인 구형이 아니다. 격변이 테이아를 괴멸시켰고, 완전히 증발한 테이아는 백열광을 뿜는 수만 도의 거대한 구름이 되어 뜨겁게 지구를 둘러쌓다. 마침내 지구는 테이아였던 것의 대부분을 움켜쥠으로써 더 육중한 행성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테이아의 모든 것이 지구에 붙들린 것은 아니다. 파편은 대부분 두 행성의 맨틀이 잘 섞인 혼합물이었다. 식어가는 암석 방울들이 한데 달라붙으면서, 더 큰 덩어리가 더 작은 덩어리들을 쓸어 모았다. 달이 급속히 합체되고 2,3년 만에 현재의 크기에 어느 정도 근접했을 것이다. 행성 형성에 관한 물리학은 달이 형성될 수 있는 자리를 지시한다. 모든 육중한 천체 둘레에는 로슈 한계라는 보이지 않는 영역이 있다. 이 한계 안쪽에서는 중력이 너무 커서 위성이 형성되지 못한다. 지구의 로슈 한계는 자전하는 천체의 중심에서부터 계산하면 1만 8,000킬로미터쯤이고, 표면에서부터는 약 1만 1,000킬로미터다, 따라서 달 형성 모형들은 새로운 위성의 위치를 안전거리인 약 2만 4,000킬로미터 위에 둔다.
대충돌설은 오컴의 면도날에 제격이다. 달에 철로 된 중심핵이 없는 이유는 테이아의 철이 대부분 지구 안쪽으로 말려들어갔기 때문이다. 달에 휘발물질이 없는 이유는 충돌하는 동안 테이아의 휘발물질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달의 한쪽 면이 항상 지구를 마주 보는 이유는 지구와 테이아의 각운동량이 짝을 이루어 하나의 회전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충돌은 이전의 어떤 각본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요인인, 지구의 축이 변칙적으로 23도쯤 기운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테이아 충돌이 지구를 문자 그대로 옆으로 쓰러뜨린 것이다.
거대한 충격이 달을 형성했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우리 태양계에 속한 다른 행성들의 변칙에 관한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저런 종류의 뒤늦은 대충돌 사건은 흔할지도, 심지어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금성이 틀린 방향으로 자전하고 물을 그토록 많이 잃어버린 이유도 대충돌로 설명될지 모른다. 아마 천왕성도 뒤늦은 거대한 충돌 때문에 누워서 돌게 되었을 터이다. 변칙은 그냥 쓱쓱 털어내면 되는 성가신 세부사항이 아니다. 변칙이야말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만물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데에 꼭 필요한 본질이다.
달이 만들어진 당시의 하늘은 지금과 달랐다. 2만 4,00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지름 3,475킬로미터짜리 달은 거인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달이 가리는 창공의 250배가 넘는 넒이의 하늘을 가로막고 있었다. 2만 4,000킬로미터 거리의 젊은 달은 지구의 암석에 대해 엄청난 조석력을 발휘했고, 바로 그 순간 지구는 대부분 용융된 상태의 달에게 동등한 크기로 반대 방향의 중력을 발휘했다. 이 웅장한 조석의 훼방이, 달이 지구에서 계속 멀어지는 핵심적 이유다. 겨우 2만 4,000킬로미터 밖에 잇던 폭 3,475킬로미터 크기의 천체가 어떻게 38만 5,000킬로미터까지 떠내려 갔을까? 그 답은 각운동량 보존법칙에서 찾을 수 있다. 지구의 조석 팽창이 달을 당기는 것과 동시에, 조석에 의해 찌그러진 달이 동등한 중력을 가지고 지구를 반대 방향으로 도로 잡아당기므로, 지구는 자전을 할 때마다 속도가 느려졌다. 바로 이 대목에서 각운동량 보전이 들어온다.
오늘날 지구-달 계의 거의 모든 각운동량은 지구로부터 38만 5,000킬로미터 거리에서 29일 주기로 공전하는 달과 관련되어 있는 것과 비교하면 45억 년 전 사정은 전혀 달랐다. 45억 년에 걸쳐 지구의 자전은 5시간마다 한 번에서 24시간마다 한 번으로 느려져온 반면, 달은 더 멀어졌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각운동량을 얻었다.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은 달 표면에 반짝이는 거울을 남겼다. 지구에서 쏜 레이저 광선이 그 거울에 맞고 튀어나와 가르쳐주는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 측정치는 단 1밀리미터도 틀리지 않는다. 1970년대 초부터 해마다, 달은 일 년에 평균 3.82센티미터씩 멀어져갔다. 듣기에는 별 것 아니지만 시간 범위를 넓혀 합산하면, 현재의 속도로 4,000년마다 1마일씩 멀어지는 셈이다. 거꾸로 재생한 테이프가 가리키는 45억 년 전의 상황은 지금과 아주 많이 다르다.
달(테이아)이 달려들어 지구의 옆구리를 때리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충돌의 힘과 그로 인한 백열광은 눈을 뜨지 못하게 하였다. 젊은 달이 지구의 창공에서 태양보다 16배 더 크게 보이고, 지금보다 250배가 큰 달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그토록 큰 달이 하늘을 가로막고 그렇게 빨리 공전하니, 84시간마다 개기일식이 일어나고, 거의 42시간마다 개기월식도 시계처럼 규칙적으로 일어났다. 실컷 일식, 월식을 봤다. 조석현상은 녹아있던 지구의 암석표면을 몇 시간마다 1킬로미터 이상 달 쪽으로 불룩해질 정도로 당겼다. 마그마의 밀물이 1킬로미터라니 상상이나 한 적이 있었던가. 시간 여행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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