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QT: 요한복음 13:1, 34 예수님의 사랑 따라하기의 어려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한복음13:1)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요즘 저는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하려고 조심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행동이 제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드는 불쾌감의 근원이 불안이라는 것을 인식하고서는 전에는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던 화를 참아냅니다. 세상사는 인과의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 아이의 행동이 한참을 돌아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줄 것을 염려한 나의 불안감이 인과의 법을 이해못하는 아이에겐 지적질로 변하고, 저의 지적에 반발하는 아이에게 다시 화를 내는 윤회의 고통을 알기에 변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리석은 자녀들 같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계략에 예수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곁에 있던 제자들조차 알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을 미리 아셨음에도, 로마총독이 광장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예수님보다는 강도의 면책을 요구할 것을 아셨음에도 예수님은 끝까지 자기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알았다 하더라도 섭섭하고 슬프고 원망스럽고 짜증내고 화가 났을 겁니다. 저는 아이가 저를 부인하는 듯한 말을 뜻도 모르고 해도, 며칠을 마음 속에 두고, 쉽게 잊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새로 계명을 주신 것이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내 아이조차 사랑하기가 이토록 어려운데 어떻게…그러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기억을 되살립니다. 사랑할 때 쓰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미움이 마음만 헛헛하게 만드는 경험을 한 것이 어디 한두 번입니까?
저는 요즘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듣지도 않고 불편한 오해만 생기는 지적보다는 먼저 나의 불안한 마음을 고백하려고 합니다. 아이가 반감을 가지는 것보다 아빠의 소심함을 알게 하는 것이 비록 쪽팔리지만 낫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아이도 인과의 법을 알고,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 아빠의 쪽팔림이 아빠의 자격지심이며 노파심임을 알고 포용할 줄 아는 멋진 젊은이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집에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모든 가정에 사랑이 퍼지면 세상도 사랑으로 넘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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