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자비 없는 자비의 집(요한복음 5:1-1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요한복음 5:5~12)
제가 근무하는 곳은 경기도 이천입니다. 점심을 먹고 남는 시간이 있고, 날씨가 좋으면 회사 근처를 산책합니다. 농경지가 펼쳐져 있고, 농로가 잘 포장되어 있습니다. 농로 곁에 개농장이나 버려진 높은 굴뚝도 있지만, 개농장의 창살 속 개들은 최근 사라졌고(다행입니다) 버려진 굴뚝 옆에는 ‘베데스다’가 있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상쇄하는 효과를 줍니다. 베데스다는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치유의 연못’이며 ‘자비의 집’이란 뜻을 가진 말이라고 합니다. 장애인을 보호하는 시설입니다. 이름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고 오늘 요한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시 기억한 것입니다.
매일성경의 설명을 바로 인용합니다. ‘안식은 경쟁이 아닌 예수님을 통해 누릴 수 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치유의 성지’로 여겨졌지만, 실상은 1등만 고침 받는 치열하고 살벌한 전쟁터였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승리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민자본주의를 살면서 약자는 강자의 밥이라는 생각에 별다른 저항감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을 ‘치유의 성지’라고 인정하고, 그래서 ‘자비의 집’이라는 것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실제 치유는 맨 처음 입수자만이 갖는 은혜라는 것을 생각하면 문득 끔찍한 생각이 듭니다. 베데스다 연못 근처에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물이 움직일 때를 눈 한 번 떼지 못한 채 지켜보다, 주위 사람들보다 먼저 들어가겠다고 마치 육상 경기의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것처럼 긴장하며 이웃을 감시하는 것을 연상하면 바로 거기가 ‘지옥물’이라는 생각까지 이어집니다. 이런 지옥물에 연연하지 않을 방법이 예수님의 말씀임을 느끼면 지긋지긋한 경쟁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제 들은 소식은 이름난 대기업인 현대자동차에서 차량디자인 업무를 하다가 결국 경쟁에 치여 자살한 가장의 죽음입니다. 그 무엇이 사람을 병들게 하며,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중요할까요? 유명세를 타는 거요? 승진해서 권력을 누리는 것이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할까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날 만큼 중요한 것은 저는 없다고 봅니다. 베데스다 연못에 목숨 걸지 마시고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의 사랑에 의지하면 세상이 조금은 나아질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 곧 사랑에 의지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유대인은 안식일에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치유한 것이 율법에 어긋난다며 딴지를 겁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도 마음 편하게 사려고 마음을 다잡으면 똑똑한 많은 사람들이 충고를 흉내 낸 비난을 합니다.
“똑바로 살아”라고요.
무엇이 똑바로, 잘 사는 것인지 여러분의 기준은 무엇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토끼 같은 자식 건사하기에는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고, 그렇게 치열하게 살지 않으셔도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젊은 시절을 치열하게 살면서 잃어버린 것들은 노년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로 간 남편을 회상하며 인터뷰를 하는 아내의 고운 얼굴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아내를 잃거나, 남편을 잃거나, 아빠를 잃거나, 엄마를 잃으면 다시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베데스다로 잘 이름 지어진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단 한 사람의 치유가 아니라 모든 보호 장애인들이 치유의 은혜를 받기를 기도합니다. 그곳에 많은 예수님들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시고 도와주신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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