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병목사회, 조지프 피시킨 지음/유강은 옮김, 문예출판사
공정한 사회를 젊은이들은 목놓아 외칩니다. 부모를 잘 만나, 좋은 기회를 얻어 인턴을 한다던가, 여러 기회를 통해 결국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을 갖는 것에 대하여 부러움과 함께 자기에게는 주어지지 못한 기회에 대하여 박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인천공항정규직 사건처럼 오랜 기간 한 직종에서 전문성을 가진 계약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하여도 기존의 정규직원들이 반대를 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경쟁관문을 뚫고 왔는데, 쉽게 계약직원으로 입사한 후 어떤 시험도 치르지 않고 정규직원이 되는 것은 불평등하다”고 주장합니다.
“너희도 시험 쳐서 정규직원이 되어라”는 주장이지요. 업역도 다르고, 급여체계도 분명 다를 터인데도 말이죠. 이건 직관적인 반대 논리입니다. 나중에 같은 직장 내에서 파이를 분배할 때, 마찰을 피하려는 본능이 작용했을 겁니다. 사실이든 아니든요.
사람의 행복은 좋은 직장이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소기업에서 아무리 열심히 오래 일하여 경력이 있어도 미래 소득은 거의 제자리입니다. 그에 비하면 대기업에 입사하면 처음에는 어려워도 세월이 지나면서 높은 급여와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대기업이 경쟁이 치열해서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사기업이라 싫으면, 공기업이나 공무원이 되어 정년을 보장받는 직장을 얻기 위해 노량진 고시촌에서 밤을 낮 삼아 공부를 하기도 하지요. 이렇게 하는 이유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사회는 사업을 할 수 있는 자금력이나, 신용을 갖는 경로가 무척이나 한정되어 있습니다. 젊은이에게는 더욱더 그 경로가 협소하고 단일하지요. 그러니 직장을 얻는 것이 더욱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떵떵거리고 자유로운 사업가 아니면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직장인이 행복의 조건으로는 너무 협소하지만 그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고 해도 부정하기 부담스럽습니다.
조지프 피시킨의 병목사회, 이 책에서는 경쟁이라는 병목이 작용하여 기회를 제한하고 결국에는 미래의 소망과 열망이 제한당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회를 다원화하여 병목을 통과하게 하거나, 우회하게 해서 다양한 열망과 소망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저자는 기존의 기회균등 논의가 ‘균등’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기회’ 자체를 치밀하게 파고듭니다. ‘단일한 기회구조가 불가피하게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므로 기회 구조를 다원화하고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좋은 삶, 행복한 삶의 개념 자체가 다양하고 풍부해야 하며, 이런 삶에 이르는 길도 마찬가지로 여러 갈래가 있어서 누구나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옮긴이의 글에서 인용함)는 주장입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우리 사회는 일류대 학위가 자격 병목으로, 금수저 부모를 만나 다양한 조기 교육을 받는 것은 발달 병목, 서울 시내 아파트나 건물 소유는 도구재 병목으로 작용하여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인생 길목 길목에서 심각한 병목현상에 맞닥뜨리는 것입니다.
평등과 정의라는 말이 매일 여기저기에서 울려 퍼집니다. 결과적 평등을 얘기하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산당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기독교 목사들이 넘쳐납니다. 젊은이들은 친구를 적으로 삼아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벗어나기가 힘이 듭니다. 사회를 바꿔 경쟁을 완화하고 친구를 친구로서 만나 선의의 경쟁으로 행복한 삶을 다양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저자는 병목을 통과하기 쉽게 해 주거나, 병목을 우회해서 다양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다양하게 만들자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가정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부모의 조건은 아이들의 발달과 미래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줍니다. 개인이 선택하지 못하는 부모의 조건이 기회를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한정된 행복을 가져가는 사회를 개선하자는 주장은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주장을 받아들일 여유도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국민의 힘, 정당이 노재승이라는 젊은이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정했습니다. 최근 그의 발언이 소개되었습니다. 요약하니 ‘가난하면 맺힌 게 많은 사람이다. 정상적으로 교육 못 받고 검정고시를 통하면 열등감이 쩐다. 올바른 부모에게서 태어나지 않으면 공산당을 찬양한다’ 뭐 이런 얘기에 동조하고 주장합니다. 태생이 중요하지, 인생을 통해 획득한 개인의 업적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로 보입니다. 사람이 발달 과정에서 성장하고 인격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무시한 주장이지요. 말 같지도 않은 주장을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돕는 선대위원장 중의 하나라고 하니 한편으로는 그 정당의 구색에 맞기도 하다는 생각과 함께 후보가 주장하는 민주 정부라는 말과는 상반되는 사람인 것 같아 어색합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개신교 목사가 또한 선대위에 합류했다는 기사도 보았습니다.
대통령 후보가 주장하는 국민이 주인인 민주정부와 자기들이 세울 그 민주정부가 수행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 선거대책위원회의 참여자들의 면면이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아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그들은 ‘국민은 생각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표 주고 나서 개털 되는 소외감을 느낄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책 속에 나오는 한 구절을 옮기면서 글을 맺습니다.
아마 가장 먼저 교육에서 계급 통합을 주창한 사람으로 손꼽힐 존 듀이의 구상은 “한 집단이 다른 집단들과의 전면적 상호작용을 차단한 채 ‘자신만의’ 이해를 가질 때면 언제나 발견되는…반 사회적 정신”을 무너뜨리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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